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병태 칼럼] '아랍의 봄'에 꽃이 필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병태 칼럼] '아랍의 봄'에 꽃이 필까

입력
2011.04.17 08:27
0 0

동구권 혁명에 비길만한 역사적 변화를 예고한 아랍 민주화 혁명의 열기가 어느덧 식은 느낌이다. 지난 겨울, 알제리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예멘 바레인 시리아 등을 휩쓴 민중 시위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 정권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이어 40년간 북아프리카의 '미친 황제'로 행세한 리비아의 카다피가 위기에 몰리자'아랍의 봄'을 반기는 환호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봄이 온 지금, 아랍 혁명은 모랫바람에 휩싸인 듯 앞을 헤아리기 힘들다.

민주화 혁명의 열기 식어

혼돈이 정리되면, 민주주의의 꽃이 필까. 혁명 열기의 발원지 알제리는 개혁을 다짐한 정권과 민중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24년간 집권한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이 민중 봉기에 놀라 도망간 튀니지는 민주헌법 제정과 자유총선 등 힘겨운 체제 전환을 앞두고 있다. 옛 야권이 이끄는 과도정부와 혁명의 주역 청년학생들이 체제전환 속도를 다투고 있어 불안한 상황이다.

무바라크 30년 독재가 민중 시위 18일 만에 무너진 아랍 중심국 이집트의 격변에 서구와 국제 언론은'로제타 혁명'이라는 헌사를 보냈다. 그러나 60년 간 이집트를 지배한 군부가 "군은 민중과 하나"라고 외치며 무바라크에 반기를 든 것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민중과 군이 합작한 혁명'이라는 칭찬보다 "혁명으로 시작해 쿠데타로 끝났다"는 논평이 실체와 가깝다.

20년간 독재를 지탱한 탄타위 국방장관이 이끄는 군사최고위원회는 국정을 장악하고 민주화 개혁을 공약했다. 그러나 실제로는'반혁명'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군사정부는 지난 주 무바라크와 두 아들을 체포, 과거 청산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그 동안 군정을 비판하거나 도전하는 5,000여명을 군법회의에서 즉결심판 형식으로 처벌했다. 혁명 열기를 전파하는 데 으뜸가는 공을 세웠다던 인터넷과 트위터 등 쇼셜미디어는 거꾸로 비판세력을 색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군부는 외세와 손 잡고 늙고 병든 독재의 수괴(首魁)를 제거, 혁명의 겉모습을 갖춘 채 지배체제를 온전하게 지킨 것으로 평가된다. 그 것으로 독재 타도를 바라는 민중, 기득권 체제를 보전하려는 지배세력, 전략적 질서 변화를 막으려는 서구의 욕구를 함께 충족시켰다. 따라서 대중의 환상과 지배세력의 탐욕, 서구의 위선을 깨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 피는 것을 보려면, 아직 숱한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상의 진보, 역사 발전에 늘 회의적인 비관론 또는 음모론일 뿐일까. 오랜 세월 축적한 변화와 발전의 기운을 펴지 못한 채 억눌렸던 아랍 민중의 열망이 분출한 것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다. 다만 그 폭발적 기세가 거스를수 없는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다. 튀니지의 깜짝 혁명, 이집트의 절반의 혁명을 기록한 채 다른 아랍 국가에서는 대개 산발적 시위와 강경한 진압, 무기력한 타협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요르단 오만 카타르 등의 전제 군주들은 서둘러 내놓은 돈과 복지 확대로 민중의 불만을 다스렸다. 강력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위 금지령으로 원천 봉쇄했다. 바레인은 사우디와 오만 등 주변 군주국 군대를 끌어들여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봄을 막으려는 서구의 위선

제국주의 시대 이래 이 지역에 깊은 연고와 전략적 거점이 있는 서구는 건성 나무라는 척 했을 뿐,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보다 오래되고 전제적인 세습군주들을 비호했다. 서구 언론이 무바라크와 카다피의'독재 세습'을 지탄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의 리비아 무력 개입은'아랍의 봄'기운에 맞불을 놓은 승부수라는 풀이가 나온다. 민중 시위를 내전과 지루한 전쟁으로 끌고가, 아랍 민중의 가슴과 머리에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카다피 축출과 지상군 투입 등 전쟁 목표와 수단을 놓고 자못 열띤 논란을 되풀이하는 것은 저들끼리는 아주 익숙한 가면극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