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는가, 얼마나 빨리 미술관에 TV의자가 놓이게 될지를, 얼마나 빨리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TV채널을 갖게 될지를, 얼마나 빨리 비디오아트를 위한 TV가 가정의 벽을 뒤덮을지를.” TV로 만들어진 소파와 샹들리에 앞에 선 관객은 백남준(1932~2006)이 생전에 던진 물음에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일찍이 TV를 이용한 미디어아트 시대를 열었던 거장의 예지력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미디어 스케이프, 백남준의 걸음으로’전이 7월 3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 불렀던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전시회 장소. 센터가 박만우 관장을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고 여는 올해 첫 전시다.
전시회에는 부엌에서 쓰는 강판에 모니터 모형을 붙여 만든 1973년 작 ‘최초의 휴대용 TV’에서부터 브라운관TV 컴퓨터 축음기 사진기 등으로 만든 높이 6m의 대형 작품 ‘거북선’까지 백남준의 최고 작품 20여점이 출품된다.
이 가운데 사상 최초로 전편이 상영되는‘모음곡 212’시리즈가 눈길을 모은다. 이 비디오 작품은 75년 미국의 13번 채널에서 방송이 끝난 후 방영되던 5분 정도 길이의 비디오 시리즈 30개로 구성돼 있다. 백남준은 이를 통해 TV에 의해 지배되고 변화하는 미디어 풍경을 비판하고자 했다.
거장의 작품과 함께 그의 영향을 받은 국내ㆍ외 미디어아트 작가 15명의 작품 30여점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백남준의 대표작 ‘TV정원’과 최승훈 박선민씨의 ‘수풀 사이로’ ‘장님물고기’ 등이 함께 설치돼 자연과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한다.
백남준의 조수였던 독일 작가 에이케의 작품 ‘큐브’도 전시된다. 나무에 매달린 거미가 거미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을 벽면 구석에 프로젝트를 사용해 만든 작품이다.
또 함께 출품된 김기철씨의 ‘사운드 드로잉’은 백남준이 작곡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고민했던 것처럼 ‘소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천착한 끝에 탄생한 작품. 턴테이블 위 흑연 드로잉에 따라 천재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과 백남준의 육성이 전해진다.
이외에도 껌껌한 방 안에 단색만이 나오는 TV를 설치한 김신일씨의 ‘TV_무분별지(無分別智)’도 신선하다. 작가는 사람들이 TV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제시하고자 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백남준의 수업을 들었다는 네덜란드 작가 그룹 조디는 ‘텔레비전에 반격하라’는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LED모니터가 오작동하는 ‘스크린 오류’를 설치했다.
백남준과 그의 후배들의 작품이 미로처럼 얽히도록 전시돼 있는 점도 주목된다. 백남준이 품었던, 시대를 앞서간 사고와 장르를 뛰어넘는 그의 예술혼을 반영하는 것이다. 박만우 관장은 “백남준은 스스로 무화(霧化)하면서 후배들의 창작을 이끌어 내고자 했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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