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최 지렁이 울음 소리란 게 있었던가.‘띠루띠루띠루루루 또르또르또르르르’라고 한다. 산죽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어떻고.‘사르륵 사르륵, 사운 사운, 솨르르 솨르르, 소소소.’
이런 소리를 듣고 발음화할 수 있는 이는 누굴까. 세상의 가장 약한 소리에도 귀문이 트인, 대지의 설움을 아는 이들일 게다. 이를 테면 속 끓는 소리 한번 못하고 자식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시골 할머니들, 먼 타향에 시집 온 베트남 며느리들. 그들이 머리 띠를 둘렀다. 불법 쇄석 공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자식들에게 부칠 고추 농사가 돌 가루에 다 망가지고 빨래조차 맘 편히 못 널고, 들쑤시는 소음 탓에 “조용히 살다 죽고 잡지”도 못하겠기에.
우리 삶의 현장에 눈 돌리지 않으며 리얼리즘 소설의 맥을 올지게 잇는 공선옥(48)씨가 새로 낸 장편소설 (창비 발행)은 그 할머니들의 ‘물 같고 풀 같은’ 싸움을 그린 이야기다. 쇄석 공장이 들어서 지금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한 시골 마을의 실제 사건을 모델로 삼았지만 “전국 곳곳이 삽질로 파헤쳐져 지금 시골이 난리도 아니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실핏줄 구석구석까지 몸살을 앓는 우리 땅의 한 이야기다.
재개발지역 철거민 출신으로 시골로 내려왔다가 할머니들을 외면할 수 없어 투쟁에 동참하는, 한때 문학 소녀였던 이영희가 이야기의 리더긴 하지만 실제 소설의 빛나는 대목은, 한 서린 세월을 해학으로 승화한 시골 할머니들의 꾸밈없이 말간 모습이다. 시위로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름을 물으면 “좋자 잖은 (좋지도 않은) 내 이름 알아서 뭣 할라고오?”, 직업을 물으면 “땅 파묵고 살제에. 나 같은 고무차때기가 뭔 재주가 있것소이?”라는 할머니들은 시위 참여에 대해서는 “청천벽력맹이로 독공장이 들어와 갖고는 이르케도 사람을 못살게 허냔 말이요”라며 똑 부러지게 답한다. 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행인들에게 제 밥을 퍼다 주고 국민권익위원장이 지역 민원을 듣기 위해 방문했을 때도 “우리가 한꺼번에 행사장에 들어가 불면 딴 사람들이 못 들어갈 것 아녀어? 복장 터질 일을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닐 것인디”라며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말 그대로 평화 시위대다.
바로 그렇기에 순박한 이 할머니들이 지지고 볶는 개발에 대해 가장 비타협적이다. 마을 청년들은 돈으로 타협을 보려 하고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자식들은 “노인네들이 뭔 데모냐”며 깔보고, 직업이 시민운동가라는 이는 지역의 작은 일이라 관심도 없다. 그러나 이 연약한 설움의 소리, 그러니까 소설의 핵심적 비유 장치인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게 된 영희, 소설을 쓰려고 시골로 내려왔던 작가 해정 등이 하나둘 손을 잡고 이 싸움에 참여한다. 상처받은 사람이 자연에서 치유받는 과정을 쓰려고 했던 해정은 ‘위로 받을 자연이 아작이 난’ 것을 알고 그 얘기를 포기한다. 차츰 지렁이 울음 소리들의 연대가 이루어지는데 80, 90대의 할머니들은 젊은 축에 속하는 60대의 언니가 된다.
싸움은 실패로 암시되지만 바로 이 연대 자체야말로 제목처럼 ‘꽃 같은 시절’임을 소설은 말한다. “스무 살 때 서방 징용 갈 때 허고 서른 살 때 산 사람한테 감자 줬다고 갔을 때는 찍소리도 못 허고 오는 매만 맞았는데 아흔 살 때 디모했다고 가서는 악이라도 쓰고 왔응께 그것이 꽃 시절이 아니고 뭣이여”(253쪽).
2009년 만해문학상을 받는 등 한층 농익은 필력을 보여 주는 작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영매(靈媒)처럼 희미하게 잊혀지는 소리를 질박한 전라도 방언에 담아 생생하게 들려준다. “‘디모’ 한다고 쭈그려 앉아 있던 그 순한 ‘조선 어미 아비’들의 눈빛을, 표정을, 말투를, 그들이 내게 나눠 주던 밥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란 작가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싸움을 쓰고 싶다는 소설 속 해정에게 “상처받은 사람들 투성인데 거기에 또 싸움하고 미워하고 할퀴어서야 되겠냐”는 출판사의 얘기는 독자들도 지레 가질 생각일지 모른다. 할머니들은 “우리는 디모를 요렇게 허요”라며 그 선입견을 오달지게 깨 줄 것 같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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