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김덕용(50)씨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린다. 소나무를 주로 쓰고 때에 따라 가옥이나 오래된 가구에서 뜯어낸 목재를 수집해 쓴다. 나무를 캔버스 삼아 그린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 여인네의 고운 자태, 차고 이지러지는 달, 달항아리는 자연스러운 나뭇결과 어우러져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여는 ‘시간을 담다’전에서는 나무를 깎아 만든 책 등 근작 50여점이 소개된다. 김씨는 “책이라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저장 창고와도 같다”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경험을 책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나무로 수백 여권을 만든 책의 표지는 그가 좋아하는 작가, 그에게 영향을 준 책,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이 녹아 있다. 가령 ‘그들의 시간’에는 그가 좋아하는 고흐 고갱 피카스 뭉크 등의 이름이 적힌 나무 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오래된 미래’에는 어머니와 유년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방학’ ‘아홉 살 인생’ ‘백 원의 하루’ ‘주홍 글씨’ 등 수십 여 권의 나무 책과 오래된 문고리가 달려 있다. 작품들은 나무를 깎고 다듬고 문지르고 채색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이뤄졌다. 석채 안료를 이용한 단청 기법도 썼고 화려한 자개와 금박을 붙여 어머니의 고운 비단 한복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만진 나무에는 그의 따뜻한 감성이 배어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뭇결은 그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담은 것입니다. 나무의 결 하나하나에 숨은 기억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게 작가인 나의 역할이다. 따뜻한 감성이 작품에 담겼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작업이 끝이 난다.”전시는 20일부터 내달 15일까지. (02)519_0800
강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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