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년에야 '가수 윤상'에 욕심이 나네요. 대중들과 소통한 가장 큰 역할이었는데 너무 간과했죠.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게 늘 어색했어요. 완벽하지 않은 사운드를, 완벽하지 않은 내 노래를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데뷔 이후 방송에서 라이브를 한 적도 거의 없고."
'이별의 그늘'로 데뷔한 지 올해로 꼭 20년이다. 윤상(43)은 가수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았지만 작곡가, 라디오 DJ, 제3세계 음악 전도사, 음반 프로듀서, 믹싱 엔지니어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그를 뮤지션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3월부터는 상명대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초빙교수라는 직함을 더했다.
윤상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세련미를 지닌 클래식한 가수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차분하고 담백하게 부르는 그의 노래는 한때 즐기고 잊혀지는 노래가 아니다. 곁에 두고 계속 위로 받고 싶은 그런 노래다. 하지만 그가 20년간 낸 정규앨범은 6집에 그친다.
지난 15일 만난 윤상은 "20주년이 되니 대중가수로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고 했다.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가 안정적인 스튜디오 버전 노래를 선호"하지만, "라이브 욕심도 난다"며 공연을 더 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좋은 연주자들과 구성을 맞춰야겠죠. 공연 준비도 충실히 하고." 역시 완벽주의자다.
그는 최근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박스 세트를 내놨다. 정규 앨범 6장과 비정규 앨범 2장을 발매 당시 오리지널 CD와 소리 크기 등 음향을 재조정한 리마스터링 CD로 짝지어 19장에 담았다. 비틀스 앨범을 리마스터링 했던 미국 유명 엔지니어 테드 젠슨이 참여했다.
아이돌에서 일렉트로닉 음악 선구자로
나지막하고 감미로운 음성, 그리고 안경 너머로 비치는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 1991년 윤상은 그야말로 등장하자마자 스타가 됐다. 싱어 송 라이터 윤상은 1,2집이 각각 100만장 이상 팔리며 당대의 아이돌로 부상했다. 정작 그는 불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정체성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2집은 대중성에 충실한 노래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따로 담아 2장의 앨범을 냈다. 그렇게 윤상은 대중의 호응보다는 끊임없이 음악적 실험을 추구했고, 당시 대중가요 호황기를 누리던 아이돌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윤상은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서정적인 멜로디는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의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섞였다. 그는 독학으로 익힌 전자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2003년 훌쩍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 후 7년간 보스턴 버클리음대에서 뮤직 신디시스(음향합성학), 뉴욕대 석사과정에서 뮤직 테크놀로지를 전공했다. 유학 중인 2009년 6집을 냈지만 가수로서의 공백이 꽤 길었다. "노래보다 다른 영역, 특히 사운드를 만드는 즐거움이 더 컸다"고 말한다.
아이유 아빠? 뮤지션들의 뮤지션
윤상은 아이유의 최신곡 '나만 몰랐던 이야기' 작곡가로 젊은 세대에도 이름을 알리며 '아이유 아빠'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김현식 4집 '여름밤의 꿈'으로 시작해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등 옛 노래들뿐 아니라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 등에 이르기까지 20년간 꾸준히 히트곡을 내온 작곡가다.
그는 아이유의 아빠와 동갑이다. "아이유요? 오빠나 아부지… 자기 기분 따라 부르는 게 달라져요. 사람들 많을 때는 선배님이라고 하죠. 20년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친군데 제 음악을 좋아해줘서 반갑죠. 오래도록 세대차이 없이 편안하게 음악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윤상은 유희열 이적 성시경 등 후배 가수들이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통한다. 음악 선배들과 어울리는 데도 열심이다. 피아니스트 김광민,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이미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윤상과 함께 공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더 알렸다. 최근엔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갔는데, "아무래도 셋 다 말주변이 없어 예능 출연은 민폐인 것 같다"며 웃었다.
방송 활동 중 윤상이 가장 즐기는 것은 라디오 DJ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깊은 밤 청취자들의 가슴을 울렸던 그는 지난해부터 KBS 쿨FM(89.1㎒·오전 11시) '윤상의 팝스팝스'를 진행하고 있다. 19일 1주년을 맞는다. 요즘 라디오 음악은 음원 데이터를 받아 트는 방식이지만 윤상은 스튜디오 안에서 CD를 직접 거는 옛 방식을 고수한다. "가끔 에러가 날 때도 있지만 제가 직접 해야 DJ 역할에 더 빠져들게 돼요. 올드하지만 이게 좋아요."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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