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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사라진 교실/ (하) 교사가 바뀌어야 질문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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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사라진 교실/ (하) 교사가 바뀌어야 질문이 살아난다

입력
2011.04.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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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생각을 말해봐" 멍석 깔아주자 "저요, 저요" 손 번쩍번쩍

지난 1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여중 1학년 4반 교실. 올해 혁신학교로 선정된 이 학교의 공개 참관 수업이 열렸다. 교사 이소윤씨는 사회 교과서에서 '화산과 지진이 많은 지역의 주민생활'단원을 편 뒤 아이들에게 최근 발생한 일본 도호쿠(東北) 지진 피해 현장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진 피해 상황에 대해 써봅시다." 이씨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 갔다. 몇몇 아이들이 머뭇거리자 이씨는 "생각이 안 나면 옆 친구 것을 보고 써도 된다"고 했다. 지금껏 남의 것을 보고 베끼면 안된다고 배워온 학생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옆 친구가 쓴 내용을 보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어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이 던져졌다. 네 명이 짝을 이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해보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해 하다 이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5모둠에서는 "인간과 자연은 적대적 관계"라는 민지와 "인간과 자연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수경이가 맞섰고, 2모둠에서는 대립하던 의견이 의외로 쉽게 하나로 모아졌다. 1모둠에서는 지적 장애가 있는 윤미(가명)에게 친구들이 과제를 설명해주고 의견을 내보라며 독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씨는 "수업에서 소외된 친구를 스스로 챙기는 모습은 교실이 바뀌면서 나타난 성과"라고 말했다.

수업 막바지가 되자 학생들은 질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제법 심도 있는 의견도 주고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2모둠의 발표를 듣던 예린이가 손을 들더니 "쓰레기를 버리면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는데 왜 그러냐"고 묻자 2모둠의 서연이는 "쓰레기를 버리면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온실가스는 지구환경을 망쳐 자연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질문을 하겠다며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서용선(37) 의정부여중 혁신부장은 "혁신학교 수업은 '배움의 공동체'형 수업을 지향하는데, 이 수업은 아이들 스스로 질문하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배우는 것이 핵심"이라며 "교사는 기초 지식 설명, 질문과 질문을 이어주는 것 외에는 역할이 없다"고 말했다.

질문과 토론이 이어지는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려는 교사들의 노력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서울 경희여중 3학년 6반 교실. 국어 수업 시간이지만 왁자지껄했다."짝꿍끼리 가위 바위 보! 이긴 사람이 토끼와 거북이 중 한 가지를 정해요. 거북이는 비유, 토끼는 강조를 써서 친구의 장점을 칭찬해 보세요."교사 강용철(35)씨의 말에 36명 학생들은 각자 배운 표현법을 응용해 짝을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씨는 "학생 중심 수업의 핵심은 '예, 아니요'식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 학생이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친밀도 쑥쑥 향상 게임'인 '토끼와 거북이 놀이' 등을 수업에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서울 송곡고 교사 나영주씨의 1학년 '기술과 가정' 토론 수업. 사회자로 뽑힌학생이 종이 마이크를 넘기면 토론자는 '결혼'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진지한 자세로 토론자의 발언을 경청했다. 13년째 질문식 토론수업을 하고 있는 나씨는 "학생의 마음 속에 궁금증이 생기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경청하고 소통하는 수업은 자연스럽게 질문이 넘치는 교실을 만든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강희경기자 kstar@hk.co.kr

■ 영미권 국가의 교사들

홍경화(24ㆍ여)씨는 중1 때인 2000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을 때 처음 접하는 자유로운 교실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다.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참여하는 수업은 대화를 하듯이 진행됐고, 교사가 묻기도 전에 아이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교사는 사소한 질문에도 일일이 답을 해줬다. 홍씨는 "한국에서는 교사가 지식을 떠먹여주고 학생들은 그것을 적고 외우느라 바빴는데 캐나다 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호기심을 찾아 해결할 수 있게 방향만 제시해줬다"며 "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일부 수업은 단순 강의식으로 이뤄졌지만 몇몇 필수과목을 빼고는 모두 스스로 과목을 선택해 들었다"고 말했다.

2008년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재학 중 교환학생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수학한 홍씨는 양국 대학강의실 분위기도 큰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활발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던 서울대 학생들이 정작 강의 시작 후엔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며 "학문에 관심과 열의가 있는 학생만 대학에 진학하는 캐나다에서는 학생이 교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문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한국에서 본 학생들은 교수가 제시한 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데 열중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전반적으론 똑똑하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특출난 천재는 보지 못했습니다."

영미권 국가에서 수학한 교수나 학생들의 이야기도 홍씨의 경험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교수 생활을 한 여옥정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강의실에서 햄버거에 콜라를 입에 가득 물고도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미국 학생들의 특징"이라며 "교수 눈치 보면서 할 말 못하는 학생보다 오히려 도전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학생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 주제에 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손 드는 것을 꺼리는 한국 학생들은 이런 기준에서 보면 낙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영미권 학생들이 중고교 시절부터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워 지식을 찾고,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훈련을 받는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이 퍼담아 주는 지식을 받아먹기만 하다 여전히 '아이'인 채로 대학에 진학한다"며 "한국에서 영재로 인정받던 아이들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뒤 채 절반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아이'가 '어른'과의 경쟁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학컨설턴트인 박영희 세콰이어그룹 대표는 "미국 학교는 저마다 학생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며 "명문 사립고인 타보 아카데미(Tabor Academy)는 학생들이 범선을 타고 캐러비안해까지 나가 해양생태계를 관찰ㆍ탐구하는 과정이 있는가 하면, 매사추세츠주의 윌브러햄 몬슨고(Wilbraham and Monson Academy)는 학기초 조를 짜 500달어의 자본금을 나눠주고 사업을 통해 자본을 늘린 과정을 발표하는 수업을 하는데 그 어떤 수업보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프랑스 파리10대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이모(35)씨는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영미 모델과 달리 교사ㆍ교수의 권위가 강해 수업 분위기는 다르지만 자기 표현력을 높이는 글쓰기가 강조되고 교사나 교수가 학생의 의문이 풀릴 때까지 학생과 문답을 이어간다"며 "학생들의 주장과 글을 교정하고 논리를 살피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 한국과 큰 차이"라고 말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 레데스마 건국대 교수가 본 한국 대학수업

국내 대학 강단에 선 외국인 교수들은 한국 대학생들의 수강 태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 위스콘신대 재직 중 2008년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가 된 로돌포 레데스마(59)씨. 2009년 2학기와 지난해 2학기 강의평가에서 우수 교수로 선정될 만큼 명강의로 유명하다.

그는 학생 평가 시 수업 참여도를 20% 반영한다. 매 강의마다 자신의 질문에 손을 들고 답하거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 1, 2점의 참여 점수를 준다. "부임 당시에는 수강생들의 낮은 참여도에 무척 당황했다"는 그는 "처음엔 점수 때문에 손을 들던 학생들이 이젠 스스로 주도하는 학습의 중요성을 깨닫고 차츰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것은 이해하지만 질문 한 번 없이 강의를 듣기만 한 학생이 과연 사회에 나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배움은 질문에서 시작되는데 말이죠."

그는 미국 대학에서도 15년 간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교수가 호기심 자체를 학생에게 전해 줄 수는 없어요. 단지 호기심 있는 학생을 독려하는 거죠. 배움이란 결국 각자의 것이고, 교수는 학생이 성장하게 돕는 사람일 뿐입니다."

레데스마 교수는 학생이 주도하는 수업을 위해 교수들이 강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말했다. 진도에 급급해 혼자 떠들기보다는 중요도가 낮은 장(章)은 학생 스스로 해결하도록 남겨 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지식을 익히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닌 독해 능력과 비판적인 사고 능력이죠."

그는 "한국에선 학교에서 실패한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어렵지만 미국에선 낮은 학점으로도 사회적 성공이 가능하다"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미국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이시도어 아이작 라비의 일화를 들려드리고 싶네요. 라비는 어떻게 과학자가 됐냐는 질문에 '어머니 덕분'이라고 답했어요. 어린 시절 주변의 다른 어머니들이 방과 후에 '오늘 뭘 배웠니'라고 묻는 것과 달리 그의 어머니는 '오늘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물었답니다. 좋은 질문을 하는 습관이 그를 과학자의 길로 이끈 거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 혁신학교 컨설팅 손우정 대표

"교사의 역할은 지식 가르치는 것보다 배움에 도전하게 하는 것"

지난해부터 경기도(71곳)와 서울(23곳)에서 선보이고 있는 혁신학교. 이곳서 진행하는 수업은 대부분 도쿄대 교육학연구과 사토 마나부(60) 교수가 '학생이 스스로 배우는 수업의 혁신을 통해 학교의 공공성을 되살리자'며 주창한 '배움의 공동체'모델을 따르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손우정(사진) 대표는 10여 년 전 국내에 처음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소개하고 현재는 혁신학교의 수업 컨설팅과 교사 연수 등을 지원하고 있는 인물이다.

"질문은 내가 배우고 있다는 증거"라고 단언한 손 대표는"무언가를 알아야 궁금증도 생기는 것처럼 수업에서 묻는다는 것은 상대의 말을 경청했고, 그 속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는 의미"라며 "질문이 많은 교실은 그 만큼 소통이 원활하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질문이 넘치는 교실을 만드려면 수업 중 교사의 개입이 대폭 축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교사는 수업 속에서 한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고,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친구들과 서로 도우며 질 높은 배움에 도전하게 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교사는 많은 지식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학생들이 활발하게 발표하고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어디에서 배움이 일어나고 어디서 끊기는지를 관찰해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최근 혁신학교가 인기를 모으면서 수업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열기도 뜨겁다"며 "그동안 학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사들도 진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답답한 교실에 남몰래 속앓이를 해왔는데 이제 희망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 침묵의 교실 바꾸려는 학부모들

'침묵의 교실'을 학생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교실로 탈바꿈하려면 교사는 물론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사교육이 아이들의 자발적인 학습과 직결되는 호기심의 발동을 봉쇄한다고 판단, 그 폐해를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단체는 최근 사교육의 문제점을 짚은 소책자 를 발간했다. 김승현 정책실장은 "아이의 호기심을 독려하기는커녕 최대한 많은 문제의 정답만 찾도록 강요하는 사교육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배포 부수를 75만부에서 100만부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학부모가 교육 현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학부모들이 재능 기부 형식으로 방과후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식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이선 정책위원은 "어른들이 짜놓은 교육의 틀 때문에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배움의 동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 기획 단계부터 학부모가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흐르기 쉬운 자녀와의 소통 방식을 아이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아들이 서울대 인문대에 재학 중인 김봉선(57ㆍ여)씨는 "호기심이 남달리 풍부해 학교에서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가정에서만큼은 모든 선택을 스스로 하고 즐길 수 있게 존중해 줬다"며 "아침 식사 때마다 어린이신문 기사를 주제로 토론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 것도 사고의 확장을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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