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거다. 강효정(독일 슈트트가르트발레단) 이상은(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발레단)씨의 주역 발탁 말이다. 한국 발레 하면 그냥 2, 3류쯤으로 여기고 으레 한 수 접고 봤는데 이건 정말 사건이다.
특히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맡게 된 강씨는 역시 같은 발레단에서 성공 신화를 일군 프린시펄(수석무용수) 강수진씨에 버금가는 스타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고 하고, '라 바야데르'에서 주역 감자티 역을 완벽히 소화해 낸 이씨는 182㎝의 큰 키를 극복하고 입단 1년도 안 돼 이런 성공을 일궈 냈다니 둘 다 진정한 대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갑자기 뚝 나타난 돌연변이 발레 한류 스타의 탄생에 그저 행복한 미소만 지을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천재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정부나 관련 협회의 공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모든 것을 자비로 해결하느라 집안 살림이 거의 거덜났었다는 것은 온 국민이 아는 스토리다. 두 사람의 집안 형편이 어떤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발레 스타로 서기까지 레슨비 학비 등 이런저런 비용이 얼마나 부담이 됐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사실 정부나 공공 기관에서 이런 발레 천재들을 돕는 제도는 전무하다.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차세대 예술 인력에게 1인당 연간 1,000만~1,500만원을 예술 활동 보조비로 지급하는 영아트 프론티어 사업이 있지만 대졸자부터 35세 이하여서 어린 재원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연간 총 금액이 10억원에 그쳐 대졸자에게도 기회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발레 한류의 또 한 축인 국내 발레단의 해외 공연도 활발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나 공공 기관의 지원도 지나치게 인색하다. 문화예술위는 문예진흥기금으로 해외 공연 나가는 발레단에게 지원하고 있지만 금액은 지난해 44억7,000만원, 올해는 49억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해외 초청을 받았을 경우에 한정해 그것도 항공료 수준만 지원한다. 특히 공연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관료를 마련할 길이 없어 해외 공연 발레단은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녀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국고로 연 10억원 정도를 해외 공연 발레단에 대 줬으나 7, 8년 전 아예 끊겼다.
개인과 단체의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한 공적 지원이 허술한 것이 어디 발레뿐이겠는가. 음악 미술 문학이 다 마찬가지다.
정부와 공공 기관들이 지원에 주저하는 이유는 고급문화의 세계 진출이 그다지 돈 되는 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큰 착각이다. 처음엔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그다지 많지 않겠지만 꾸준한 투자로 세계 유수의 발레리나와 발레단, 성악가와 필하모니, 화가와 문학자로 키운다면 한국 경제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가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도 효과는 크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고급문화 한류재단이다. 전문가로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진짜 천재들을 가려낸 뒤 공적 지원을 제공하는 곳이다. 또 재단을 통해 단체의 해외 활동 지원금도 지금보다 10배 정도는 더 확보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공연이면 무조건 돈을 대 주는 것이다. 이 정도 지원을 하려면 재단 재정이 풍부해야 하니 정부와 공공 기관의 돈은 물론, 기업 기부금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이은호 문화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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