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면 날이 밝아옵니다.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고 싶지 않은 아침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주간을 맡은 잡지의 봄 호 권두언에 쓸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벌떡 일어나 서재로 갑니다. 미리 써 놓았던 한시 새로 쓰기 원고와 함께 편집장에게 보내고 아침을 차려 먹습니다. 부지깽이 나물 무침이 입맛을 돋웁니다. 어제 우리 아파트 알뜰장터 야채 가게에서 사서 무쳐봤는데 취나물보다 맛있습니다.
무심천변의 애절한 벚꽃
오늘 출근은 자전거로 해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별러왔습니다. 대학 교정에 벚꽃이 활짝 피었던데 무심천 벚꽃이 벌써 져버린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공항대교를 건너 미호천 강둑길에 접어듭니다. 지난 겨울에 시멘트 포장이 되었습니다. 흙 길을 달릴 때마다 어릴 적 등굣길에서 느꼈던 정취를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어느새 무심천 자전거 도로입니다. 벚꽃나무 가지가 꽃잎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대견할 정도로 벚꽃이 무성하게 피었습니다. 무심천 너머로 보이는 꽃나무가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봄도 세월의 강물 너머에 있는 내 젊은 시절의 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대학원 수업의 강의 주제는 '자연과 계절을 노래한 시에 나타난 자연관'입니다.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리는 이백(李白) 의 시 부터 읽습니다.
'옥빛 실 같은 풀이 돋고 있지만 / 남도의 뽕나무는 푸른 가지가 늘어졌겠지요 // 당신이 가버리면 / 마음을 잘라낸 듯 아플 테지요 //봄바람은 / 아무것도 모르는 채 / 비단 휘장 안으로 들어오네요.'
모두들 아름답고 희망에 넘치는 봄을 맞이하며 좋아할 것 같지만 이별을 앞둔 여인도 그럴까요? 새싹이 돋고 봄바람이 불어오면 그녀는 가슴이 철렁할 겁니다. 시인 두보(杜甫)도 에서 봄의 아름다움을 애절하게 노래했지요. '꽃잎 한 점에도 봄이 가는데/ 바람에 만 점 꽃잎이 진다.'
노년의 시선에 비친 봄이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합니다. 김소월의 와 백석의 까지, 오늘 읽는 시에는 모두 깊은 슬픔이 배어 있네요.
학교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아침에는 한적하던 무심천 산책로에 벚꽃 구경 나온 사람들이 넘쳐 납니다. 꽃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꽃 그늘을 드리운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봄꽃과 새싹들에게도 눈길을 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해 지기 전에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냥 보내고 나면 산골 마을의 봄을 못 보고 올 봄을 보내고 말 것 같습니다. 동네 단골 방앗간에 들러 어제 주문해놓은 절편을 찾아 차에 싣고 속리산을 찾아 떠납니다. 쑥을 넣어 만든 절편 맛을 봅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던 그 맛입니다. 내년 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무척 그리운 봄
왼쪽으로는 천황봉이, 오른쪽으로는 구병산이 바라다 보이는 동네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걸어봅니다. 물소리가 계곡물만큼이나 맑습니다. 소나무 숲 속에 진달래가 드문드문 보이고, 양지바른 산비탈에는 산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노부부가 밭고랑에 옥수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인사를 건넸더니 쉬어가라며 평상 한 귀퉁이를 내 줍니다. 사람이 무척 그리웠던 듯 아들 대하듯 합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떡 한 접시를 드리고 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니 집 앞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데, 올 봄도 그냥 지나가 버릴 것 같습니다.
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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