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보건복지부 장관 1년만 시켜주면 바로 건강보험을 흑자로 만들 수 있는데 말입니다."
서울시내에서 30년간 약국을 운영해온 약사 강모씨는 최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의사와 만나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건강보험 재정적자 확대우려 속에 의료계와 약사회는 한 목소리로 "약값을 대폭 낮추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제약업계가 반발하는 등 약값 인하 논란이 커지고 있다.
리베이트 자금 되는 비싼 약값
우리나라 복제약값은 신약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2006년까지는 신약대비 최대 80%까지 보장해줬고, 그 이후 최대 68%까지 보장해 준다. 반면 2007년 기준 신약대비 복제약 가격이 프랑스는 45%, 독일 33%, 영국 31%, 일본 33%, 미국 16%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 발표자료에 따르면, 주요 80개 성분(사용량 가중치)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국내 복제약값은 신약대비 72.5%였다. 구매력 기준으로 16개국 중 세 번째로 약값이 비쌌다.
이렇게 약값을 높이 쳐주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남는 이익으로 리베이트(뒷돈) 경쟁에 나서 의료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50개 제약사 난립도 문제
의사, 약사들은 "왜 복지부는 250개 제약회사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복지부가 리베이트를 받는 것 아니냐"라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약사 강씨는 "우리나라 제약사는 50개 정도가 적당한 게 아닌가 싶다"며 "문제가 무엇인지 뻔히 눈에 보이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개원의사 최모씨는 "우리나라는 약값은 너무 높고, 의료수가는 유럽에 비해 너무 낮다"며 "그렇기 때문에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완제의약품업체 250개사의 판매관리비는 매출액의 39%에 이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리베이트 비용으로 추산된다. 원료의약품ㆍ한약제 제조업체까지 합치면 총 700개가 넘고, 이중 60% 이상이 종업원 30명이 안 되는 영세업체이다.
복지부는 왜 신중한가
정부는 약값 상위 20% 의약품의 점진적 가격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인하 폭이 미흡하다는 주장이 많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2006년 이전에 보험등재된 약품가격을 2007년 이후 등재 약품가 정도로 맞추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그러나 3년간 매년 7%, 7%, 6%씩 가격을 인하하면, 마지막 3년째부터는 한해 8,000억원 정도의 건강보험 약품비가 절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폭적인 약값 인하 압박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일본 제약업계가 10년 전까지는 꽤 경쟁력이 있었는데, 약값을 대폭 인하한 뒤 산업이 크게 후퇴했다"며 "복제약이 주를 이루는 국내 제약산업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제약사별로 생산하는 의약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약값을 대폭 인하한다고 해도, 경쟁력 없는 업체들이 먼저 정리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점은 약값 자체보다, 의사들이 너무 많은 의약품을 처방하는 문제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안받고, 약품을 적게 처방하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제약협회도 "불법 리베이트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전체 약값 수준을 낮추면 설비ㆍ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수출을 늘리려는 선량한 제약업체의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