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 ‘바닷가 우체국’이 있다. 그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그렇다. 우리 시대는 종이 편지지에 편지를 쓰지도 않고, 우체국 소인이 선명하게 찍힌 편지를 받지 못하는 ‘슬픈 시대’다. @의, 골뱅이처럼 생긴 주소를 가진 세대는 종이에 펜을 들어 편지를 쓰지 않는다. 타이핑하여 클릭하면 편지는 지구 끝까지라도 실시간으로 ‘딩동’하며 날아갔다 즉시 답을 받아 돌아온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영상으로 대화를 한다. 안도현의 시에 내 생각을 더하자면 ‘편지를 기다려보지 못해본 사람도 슬픈 사람이다.’ 답장은 편지를 보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보내지도 않는데 오는 답장은 없다. 그것이 인생의 룰이며 정답이다. 청춘의 시절,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지를 보냈으며 답장을 기다렸는가. 거기다 답장을 기다린다는 애원의 문구까지 더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답장을 기다리던 시간이 기다림이든 사상이든 절실하게 발효시켜 주었다고 믿는다. 오늘은 4월의 편지를 쓰자. 그 편지를 받으면 답장을 쓰자. 우표를 붙여 답장을 보내자. 꽃잎 몇 장 넣어 꽃 편지를 써 보고 새잎 몇 장 넣어 신록의 답장을 보내보자.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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