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전쟁/랑셴핑 지음ㆍ홍순도 옮김/비아북 발행ㆍ323쪽ㆍ2만원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중국에서 찻잎을 수입하느라 막대한 은을 써야 했던 영국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팔아 은을 회수했다. 영국은 중국과 아편전쟁(1840~42년)까지 치른 후 좀 더 교묘한 수단을 택했다. 1848년 동인도회사는 영국왕실식물원 온실부 주임을 식물학자로 가장시켜 중국에 파견했다.
그는 푸젠(福建)성 산간 지역에서 차 씨앗 1만7,000여 개와 2만그루의 차 나무를 빼돌렸다. 차 기술자 8명도 함께 데리고 갔다. 그후 인도에서 차가 재배되기 시작했고, 1890년대에는 인도 차가 영국 국내 시장의 90%를 차지하게 됐다. 중국은 차 무역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다.
대만 출생으로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해 시카고대 교수를 지낸 랑셴핑(朗咸平) 홍콩 중문대 석좌교수는 지금도 중국에서 이 같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자본전쟁> 에서 밝히고 있다. 겉으로는 급부상하는 중국 경제를 항해 '차이메리카'운운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막대한 자본으로 중국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랑 교수의 분석 중 특이한 점은 서구 자본이 거대 중국 경제를 조정하는 모습을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는 것. 그는 레닌의 제국주의 5단계가 오늘날 자본시장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서구 자본이 중국의 천연자원 농업 산업을 잠식하고 있는 양상을 폭로하고 있다. 자본전쟁>
중국은 대두(콩) 야생품종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 이전만 해도 대두 순 수출국이었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대두 생산량이 세계 1위에서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4위로 떨어져 버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미국 최대의 종자 기업이자 곡물메이저인 몬산토는 2000년 중국 농업과학원이 우정의 표시로 준 우량 대두 씨를 분석해 고 생산량 유전자와 병에 강한 유전자를 찾아낸 뒤 이를 개량해 세계 101개국에 64개 항목의 특허를 냈다. 2003년 이후 미국은 중국에 이 대두를 수입하도록 강요했고 중국 대두는 도태하고 말았다.
2004년 미국 농업부는 날씨가 좋지 않아 대두 생산량이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국제 금융자본이 대두 선물을 마구 사들여 톤당 대두 가격이 중국 돈으로 2,300위안에서 4,300위안까지 급상승했다. 중국의 대두 압착 기업들은 미국산 대두 800만톤을 이 가격에 사들였다.
이후 미국 농업부가 생산량을 상향 조정하자 대두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했고 중국 대두 압착 기업의 70%가 파산했다. 그 다음 해에 미국의 곡물 메이저들이 중국에 들어가 생산을 중단한 기업의 70%를 사들였다. 이렇게 해서 중국인들이 많이 먹는 루화나 진룽위 같은 식용유가 모두 이 기업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랑 교수는 이 2004년 대두 위기는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 곡물 메이저들이 연합으로 발동한 대두 금융 전쟁이라고 분석하면서 그 결과, 중국인이 매일 먹는 식용유 가격이 이제는 월스트리트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개탄한다. 중국 식용유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몬산토를 비롯한 곡물 메이저들과 월스트리트가 바로 현대판 동인도회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랑 교수는 몬산토가 대두에 이어 현재 옥수수로 두 번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몬산토는 광시(廣西)성에서 옥수수 종자를 무료로 나눠 줘 재배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옥수수는 유전자 변형 종자로 1, 2대에는 생산량도 높고 병충해에 강하지만 3대 이후에는 생산량이 대폭 하락하며, 병충해도 심하다. 이에 맞는 농약을 생산하는 회사는 세계에서 2곳밖에 없고 그 중 한 곳이 몬산토다. 랑 교수는 몬산토가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중국에서 똑같은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한다.
랑 교수는 서구 자본이 중국을 공략하는 장면을 다양하게 포착한다. 프랑스 수도 회사 베올리아가 2007년 란저우(蘭州)시로부터 상수도를 사들인 후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고 회계조작으로 비용을 높여 수도요금을 49%나 올린 사례 등에서 중국 공무원들이 협상 과정에서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코카콜라가 중국의 대표적 음료 회사 후이위안(匯源)주스를 인수하려 한 사례에서는 외자가 어떻게 중국 기업을 인수합병하는지를, 월마트 진출에서는 서구 자본이 중국에서 산업 사슬을 통합해 가는 모습을 설명한다.
랑 교수는 서구 자본의 이면에는 해당 국가들의 정치적 지원이 있으며, 중국이 세계적 패권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구가 만들어 놓은 글로벌 게임의 규칙을 새로 만드는 룰_메이커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랑 교수의 주장에서는 다소 중국 국수주의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세계 경제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서구 자본의 실체를 한국의 경제학자들보다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외환 위기 당시 최대의 종자 기업을 외국 자본에 내 준 아픔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서구 자본의 위험성을 되새기게 된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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