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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노래도 늙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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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노래도 늙는구나

입력
2011.04.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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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고약한 버릇이다. 무심히 지나쳐도 좋을, 신문에 쓰지 못할 것들까지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써놓은 시에서도, 옆자리에 앉아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에서도'세상'을 읽는다. 아무 목적 없는 저녁 자리에서 나이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 를 뒤집어서는 '그럼 이 세상에 살만한 노인은 누구인가' 관찰한다. 술 취해 노래방에서 조용필의 를 부르면서 오래 전 세상을 떠난 고교 단짝과의 추억을 불러낸다.'뉴스'로 못다한 세상까지 오지랖 넓게 가슴에 담으며 살아가는 인생. 운명이다.

■ 한국일보 임철순 주필이 수필집 (열린책들)를 펴냈다. 올해로 기자생활 37년. 긴 시간 버릇처럼 두리번거린 세상 풍경과 생각들이 좀 많았으랴마는 이렇게 책으로 담아 낸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2009년에 타계한 장영희 교수의 말처럼"꽃보다 나무가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반백(半白)과 낙치(落齒)의 초로가 되어서야. 그는 그 이유를 동년배인 산울림 김창완이 부른 를 들으며 콧날이 시큰해진 느낌으로 대신했다."삶에서 우려난 노래는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담고 세월과 함께 나이 들어갑니다."

■ 그도 김창완처럼 노래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삶에서 우러나온 글로 우리시대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래서 지금에야 를 썼을 것이다. 그의 글에는 자랑이 없다. 세상에 대한 날 선 분노도 없다. 미움도 투정으로 끝난다. 따뜻한 시선, 섬세한 감정, 소심한 그의 마음은 문화와 역사와 인물을 넘나들며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1절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동요 가사 2절에 담긴 어른들의 원망과 그리움, 상실의 아픔, 멈추고 싶은 순간들을 찾아냈다. 선비처럼 단아하고, 소박하고, 겸손하면서 시간을 거스르지 않았다.

■ 그래서 그 앞에서는 노래도, 시도 늙는다. 그에게 늙음은 낡음이나 쓸모 없음이 아니다. 삶 자체이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가사도 세월의 이끼가 끼면서 인연과 의미가 되었고, 삶의 고비마다 가슴 속 깊이 들어와 박히는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늙음의 쓸쓸함을 숨기지 않는 가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하다. 그가 말하는 늙은 노래들이 오늘도'올드''추억'이란 이름을 달고 지하철 안을 떠돈다. 소음을 차단하듯 귀를 막는 젊은이들은 아직은 모를 것이다. 노래에 스며든 삶을, 그리고 노래도 삶과 함께 늙는다는 사실을.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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