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에서 납세자들은 국가가 설정한 과세 틀 안에서 이익을 추구하도록 거래를 구성하는 자유를 누린다. 오늘날 자본과 노동은 거의 제약 없이 이동하게 된 반면, 국가의 대응수단은 국경을 넘어서기 곤란한 상황이어서 국제 거래를 통한 탈세와 조세 회피가 증가하고 있다. 2007년 부동산 재벌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미국 국세청은 5만2,000개에 이르는 스위스 UBS 은행 비밀구좌를 발견했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국세청의 계도에 응해 6만개의 역외구좌가 신고됐다.
자본 국제화로 과세 허점 늘어
자본 국제화가 진전되면서 기존 과세제도의 약점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는 자기 나라 거주자가 전세계에서 얻는 소득에 대해 과세한다는 거주지주의 과세제도가 보편화함에 따라 거주지 개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주지는 과거 경제활동이 단순한 시절에는 법인의 등기장소와 같은 일정 표식을 기준으로 판정하는 것이 실제 경제활동에 부합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너무나 많은 실체(entity)와 기구(vehicle)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표식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더 나아가 법인의 실질적인 지배 또는 관리장소도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거나 수시로 이동하기 때문에 특정 납세자의 거주지를 확정하기 곤란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거주지주의 적용에 필수적인 자국 거주자 여부 판정에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앞으로는 개인에 의한 탈세와 조세 회피가 주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산가들에 의한 탈세와 부의 변칙적 이전에 대한 규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큰 과제가 되고 있다. 개인은 기업에 비해 지리적 이동이 자유로워 세법상 자신의 지위를 변경하기 용이하다. 비거주자가 되면 그 나라에서의 조세 부담이 줄어든다. 부의 무상이전에 대한 세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로 자산 소재지를 이전시키는 방법, 친족을 활용하는 방법을 통해 조세를 회피하기도 한다. 정부와 납세자의 긴장은 제도가 복잡할수록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에 올바로 대응하려면 현행 제도를 충실히 보완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개인의 자산 취득에 사용된 자금출처 조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에 살면서 돈은 해외에 두고 과세를 회피하는 사례를 잘 찾아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번 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해외에서 번 돈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 그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정부간 협력이 증대되어야 한다.
조세회피 역이민 대책을
상속세나 증여세 회피를 위한 이민과 역이민이 늘어나는 추세에도 대응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돌아올 작정으로 외국으로 나가서는 상속ㆍ증여세 등을 해결하고 온다. 이민 등으로 외국에 오래 나가 있는 경우에는 나갈 때 재산을 처분한 것과 같이 보는 출국세(exit tax)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민을 막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OECD 국가가 이미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과세를 강화할 경우 국내 세원이 위축될 수 있다.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고 운영하여야 한다. 납세자가 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세금을 신고할 수 있도록 알기 쉬운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복잡한 세법은 가급적 소급하여 적용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할 것이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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