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1시50분께 인천국제공항 화물청사 안쪽 활주로. 흰색 작업복을 입은 지상요원들이 잔뜩 긴장한 채 부산히 움직였다. 외규장각 도서 1차분 75권(유일본 8권 포함)이 항공편으로 도착한 것이다. 188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의해 약탈된 뒤 무려 145년 만의 귀환이다.
항공기 옆 화물칸이 열리자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아시아나가 함께 합니다'라는 글자가 인쇄된 외규장각 도서 운송용 특수 컨테이너 2개가 천천히 경사로로 미끄러져 나왔다. 주변에 서 있던 지상요원들은 화물 지게차로 이를 받았다. 진땀 흐르는 10여분의 세심한 작업이었다. 지게차에 실린 외규장각 도서는 이어 10여분간 느릿느릿 속도로 청사 내로 이송됐다.
비행기는 앞서 오전 3시10분께 프랑스 샤를_드골 공항을 출발했다. 프랑스 정부는 외규장각 도서를 담은 나무 상자 5개를 특수 컨테이너 2개에 나눠 넣은 뒤 비행기에 실어 보냈다. 장시간의 비행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도록 특수 컨테이너엔 항온ㆍ항습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약 10시간40분 만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 화물청사에 도착해 통관 및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컨테이너는 유물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무진동 특수 차량 한 대에 실렸다. 이때부터 운송 책임은 아시아나항공에서 국내 업체인 동부아트로 넘어갔다. 무진동 특수 차량은 공항고속도로와 서울 시내를 달려 4시5분께 외규장각 도서를 소장, 관리하게 될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했다. 외규장각 도서는 당초 서울대 규장각이나 원래 있던 강화도 외규장각 등으로 옮기려 했으나 도서 관리와 국민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기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한 컨테이너는 바로 수장고로 옮겨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어 나무 상자를 컨테이너에서 꺼냈지만 개봉은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뒀다. 온도와 습도가 갑자기 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 2일 정도 환경 적응 기간을 갖는다. 도서를 최적의 상태로 보관하기 위해 마련된 수장고는 온도 20도, 습도 55%를 항시 유지하고 있다. 외규장각 도서는 적응 기간이 끝나면 나무진이 나오지 않고 습도 조절 기능이 뛰어난 오동나무 장 안에 보관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와의 합의문에 따라 별도의 축하 행사를 갖지 않았다. 유물을 내줘야 하는 프랑스를 고려한 것이다. 나머지 222권의 외규장각 도서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에 번갈아 실려 3회에 걸쳐 5월 27일까지 들어온다.
파리에서 한국까지 외규장각 도서를 싣고 온 아시아나항공 여객기(OZ502편) 배정곤 기장은 "무사히 수송을 완료해 가슴이 뜨겁고 자부심도 크다"며 "역사적 행사에 동참하게 된 것을 대대손손 자랑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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