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과 건설업계, 벼랑 끝에 선 두 업계가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제2금융권을 통틀어 28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사이에 두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 상황. 하지만 '치킨게임'성격이 짙어 이대로 가면 공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변의 시선이다.
깊어진 갈등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삼부토건이 12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 직접적 배경은 PF 대출 만기 연장을 둘러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사업에 대한 PF 대출 4,270억원 중 제2금융권이 빌려준 돈은 절반에 육박하는 2,100억원 가량. 제2금융권은 "담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대출금을 전액 회수할 수밖에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특히 삼부토건에게 공동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의 대출에 대한 담보까지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코너로 몰리자 삼부토건도 강수를 뒀다. 대주단(채권단) 내 은행들이 제2금융권을 설득하는 와중에 대주단에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제2금융권은 물론 은행, 그리고 최근 이 회사 기업어음(CP)을 매입한 투자자들까지도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궁지로 내몬 것이다. 업계에선 "일종의 물귀신 작전"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대주단과 삼부토건은 법정관리 신청 철회를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설령 법정관리를 철회한다고 해도 저축은행과 삼부토건 사이에 깊게 패인 감정이 골은 복원이 쉽지 않아 보인다.
궁지의 저축은행
제2금융권과 건설업계의 대립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한 중견 건설사는 광주에서 4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사업에 대한 PF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사업지 외에 추가담보를 요구하는 저축은행 등과 마찰을 빚었다. 부산에서 2,000억원 규모의 주택사업을 진행 중인 한 대형 건설사도 PF 대출 만기 연장에 대해 수수료를 요구하는 제2금융권과 티격태격했다.
양측의 불신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은 그 만큼 두 업계의 사정이 절박하다는 방증.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올 들어 삼화저축은행을 필두로 무려 8곳이 영업정지됐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는 불안감이 상당하다. PF 부실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언제든 추가 퇴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업계를 휘감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PF 대출 연체율은 2009년말 10.6%에서 작년 말 24.3%로 두 배 이상 폭등하는 등 건설경기 침체와 맞물려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저축은행 위기와 구조조정 방향' 보고서에서 "올 하반기 발표될 2010회계연도 저축은행 업계의 실적은 상반기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며 "몇몇 저축은행에 적기시정 조치가 내려질 경우 위기가 전염되면서 주춤했던 저축은행 위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남 살리겠다고 무작정 봐줄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충분한 담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담보 제공을 거부하는 모럴 해저드까지 용인해줄 만큼 여유 있는 처지가 못 된다"고 말했다.
위기의 건설업계
건설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좀처럼 회복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올 들어 동일토건, 월드건설, 진흥기업, LIG건설, 그리고 삼부토건까지 줄줄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대기업(효성, LIG그룹)들이 '건설사 꼬리 자르기'에 나선다는 비판에 이달 중 실시되는 기업신용평가에서 대기업 계열 건설사 조차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PF 대출에 대해 사업성을 판단해 대출을 해줘 놓고 건설경기가 악화하니까 한꺼번에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난 일"이라며 "적어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작년 말 현재 제2금융권이 보유하고 있는 PF 대출 잔액은 27조8,000억원. 이중 저축은행이 12조2,000억원으로 43%를 넘는 만큼, 문제가 확산될 경우 양측 모두에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두 업계가 조금씩 물러서서 양보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며 "현재로선 법정관리 외에 대안이 없는 만큼 원활한 워크아웃을 위해 구조조정촉진법 부활 등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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