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 조용히 칠판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질문요? 당연히 없죠. 학생들이 할 일은 그저 수업시간 내내 칠판에 적힌 내용을 옮겨 적고 교수님 설명을 듣는 것뿐입니다. 고교 수업 방식과 다르지 않아요. 이곳이 대학 강의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익숙한 방식이라 그럴까요…. 교수님과 소통은 없지만 이상하게 편안해요."
한국교육개발원이 올해초 발간한 보고서에 언급된 '질문이 사라진 교실'의 한 장면이다. 연구팀이 인문계 대학생들의 구술을 받아 보고서에서 재현한 대학 강의실 풍경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엄숙하다. 학생들은 교수(교사)의 강의 내용에 토를 달지 않고,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입을 열지 못한다. 대학 입학을 위해 10년 넘게 받아온 사교육은 호기심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렸다.
선진국에서 학생이 의문이 있거나 호기심이 발동해 얼마나 활발히 교수나 교사에게 질문을 하는가는 수업이 얼마나 알차고 훌륭한지를 정의하는 중요한 척도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수업이 학습 유발 효과가 높다는 사실은 검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실 현실은 참담하다. 의문과 호기심이 충만해 적극적으로 손을 드는 학생은커녕, 질문을 적극 유도해 학생의 학업 성취 욕구를 자극하고 학업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교수나 교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질문 없는 교실의 현주소를 알아 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4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전국 초중고 교사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교사 대부분(91.5%ㆍ915명)이 '교육을 위해 활발한 질문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절반 이상(53.1%)의 교사가 '학생들이 전반적으로 질문을 통한 수업 참여에 소극적 혹은 매우 소극적'이라고 답했다. 학생의 질문이 교육 효과를 자극하고 수업의 질을 높이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의 교실은 정반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학교 교실에서 질문이 자취를 감춘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해 대다수의 교사들은 '입시 위주 교육시스템'(38.3%)과 '과다한 학급당 학생 수'(32.1%)를 꼽았다. 한마디로 공교육 구조가 학생들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밖에 '급한 학습 진도'(8.0%), '사교육을 통한 선행학습'(5.4%), '윗사람에게 질문하기 어려운 유교 문화권의 관행'(1.9%) 등도 질문 없는 교실을 만드는 원인으로 꼽혔다.
한유경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수업 현장에서 질문이 사라진 데에는 소극적인 학생과 교사의 태도, 교수법의 부재 등이 일조했다"며 "그러나 원 없이 질문을 받아줄 수 있는 정책적 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사와 학생의 힘만으로 질문 없는 교실을 타파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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