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해서 걸리는 병'인 A형 간염이 크게 늘고 있다. 1년 중 A형 간염 환자 수가 2월 4%에서 3월 7%, 4월 13%로 급증한다(질병관리본부). 이는 A형 간염 바이러스가 물과 흙, 오물, 대변 등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야외활동이 늘면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A형 간염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항체가 없는 10~30대에서 최근 발병률이 치솟고 있다"고 밝혔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A형 간염 항체 보유율이 10%도 되지 않아 젊은 층이 A형 간염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염은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간염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간염에 걸렸다면 철저히 관리해 간질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간경변ㆍ간암으로 이어지는 간염
간염은 말 그대로 간에 염증이 생긴 상태다. 염증의 지속기간을 기준으로 급성 혹은 만성 감염으로 구분한다. 급성 간염은 발병 후 3~4개월 안에 증상과 간 기능이 회복되거나 완치되는 간염이다. 만성 간염은 증상이 6개월 이상 계속된다.
원인은 바이러스 침투나 과음, 잘못된 약 복용, 비만 등 다양한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이러스 침투로 인한 염증이다.
간염 바이러스는 크게 A, B, C, D, E, F형 등 여섯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A, B, C형 간염이다. A형 간염은 급성 형태로만 발병해 한 번 앓으면 항체가 생겨 재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B형과 C형은 만성화할 확률이 55~85%로 높고, 예방 백신도 없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B형은 만성화할 확률이 C형보다 높지 않지만 모태에서 감염됐다면(수직 감염) 90%가 만성으로 이어지고, 어려서 앓을수록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B형 간염 백신은 생후 2개월 이내 맞는 게 좋으며, 산모가 간염 환자라면 태어나자마자 접종해야 한다.
급성 간염은 열과 오한이 나는 등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다. 반면, 만성 간염은 피로, 두통,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증상이 없다가 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뒤에야 알게 된다.
B형 간염, 만성 간질환의 주범
우리나라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의 60~70%가 B형 간염 보균자(국립암센터 자료)이며, 특히 간암 환자의 75%가 B형 간염 보균자다. 전체 인구의 5~10%가 만성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통계도 있다.
유병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대한간학회 이사장)는 "만성 B형 간염의 17%가 간경변으로 진행되고 국내 간암 환자의 50~70%가 B형 간염 바이러스(HBV)에 감염돼 있다"며 "B형 간염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최소한 6개월마다 검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건강한 사람은 간수치(ALT/AST)만 확인해도 무방하지만, B형 간염 환자는 바이러스 활성도를 알 수 있는 DNA 검사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까닭 없이 피로하거나 소화불량, 잇몸 출혈 등의 증세가 나타나면 검진을 하는 게 좋다. 또, 매년 정기검진을 통해 간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간염은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하면 50% 이상은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B형 간염 백신으로는 유박스B(LG생명과학), 헤파비 주(한국백신), 헤파뮨 주(SK 케미칼) 등이 있다.
간염은 보균자 산모가 출산할 때나 혈액, 침, 분비물 등과 같은 체액을 통해 전염된다. 찌개를 함께 먹거나 술잔을 돌리는 우리 문화로 인해 간염 발생률이 높다는 말이 있지만, 잘못된 속설이다. 침에 들어있는 간염바이러스가 혈관으로 침투할 때만 전염되기 때문이다.
만성 간염을 이기려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속설이나 민간요법에 혹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때문에 오히려 간 손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은 검증되지 않은 일부 건강기능식품과 간에 좋다고 헛개나무, 민들레, 영지버섯, 상황버섯, 인진쑥 등 민간요법에 더 많이 의존하는데, 이는 오히려 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30대가 많은 걸리는 A형 간염
불결한 환경에서 잘 걸려 '후진국 병'으로 불리는 A형 간염이 최근 젊은 층에서 크게 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배시현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대한간학회 홍보이사)는 "A형 간염은 1980년대만 해도 국민 대부분이 항체를 보유했지만 현재 국민 항체 보유율이 10%를 밑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A형 간염 발생률은 인구 10만명 당 62.4%명으로 매우 높지만, 수도권 지역의 20, 30대 젊은 층에서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지난 2009년(1만5,231명의 환자가 발생)이후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발병률이 높고, 이 같은 수준은 2028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A형 간염은 장티푸스나 콜레라처럼 입으로 옮는 전염병으로 오염된 음식이나 음료수를 통해 주로 전염된다. 오염된 식수로 씻은 샐?約?과일 등을 먹거나 오염된 물에서 채취한 어패류를 날로 먹어 감염될 수 있다. 감염 환자의 침과 대변을 통해 쉽게 전파되므로 단체생활을 하면 감염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이상협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감기 유사 증상이 1주일 이상 계속되면서 소변 색이 노랗게 변하면 A형 간염을 의심해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다행히 A형 간염 바이러스는 85도에서 1분 동안 끓이거나 물을 염소 소독하면 죽는다. 이준혁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따라서 음식을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예방의 지름길"이라며 "식사 전이나 외출한 뒤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는 등 개인위생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형 간염은 어릴 때 감염되면 거의 아무런 증상 없이 치유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심해져 40대 이상은 2%, 60대 이상은 4%가 사망한다. A형 간염도 B형 간염처럼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1세가 넘으면 예방 접종을 할 수 있고, 접종 후 6~12개월 뒤에 추가 접종하면 된다. 하브릭스(GSK)를 비롯해 이팍살(베르나), 아박심(사노피파스퇴르) 등이 있다.
한편, C형 간염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2년 1,927명이던 환자가 2009년 6,40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질병관리본부). 손톱깎기, 칫솔, 면도기 같은 혈액이 묻을 수 있고 피부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생활용품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 C형 간염도 감염 초기에는 증상이 대부분 없지만, 만성 감염이나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악화한 뒤에야 뒤늦게 발견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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