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턱에 선 대학 1학년, 삶은 상실의 연속이다. 교복과 함께 때묻지 않은 순정이 떠나간다. 기성세대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믿음조차 멀어져 간다. 소중한 이성친구까지도…. 김난도 교수의 베스트셀러 의 제목을 빌려 정의 내린다면 '잃으니까 청춘' 아닐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가 출간 된지 24년이 지나서도 대학가에서 여전히 읽히고 회자되는 이유가 그리 특별하진 않을 것이다. 청춘의 고통과 불안은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뒤늦게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1960년대 후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 청춘별곡은 여전히 유효하다. 주인공 와타나베(마즈야마 겐이치)가 겪는 유난한 상실의 이력은 변치 않는 울림을 주고도 남을 듯하다.
영화는 소설의 줄거리를 충실히 따라간다. 와타나베가 고교 시절 절친한 친구 기즈키를 자살로 잃고, 대학에 입학해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기쿠치 린코)와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며 여러 여자를 전전하는 모습을 전한다. 학생운동 때문에 전공과는 담을 쌓으면서도 여러 책을 탐독하고, 순수한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도 여체를 탐닉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은 정착하지 못하는 청춘의 숙명을 상징한다.
청춘의 흔들리는 정서를 놓치지 않는 빼어난 영상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화려한 카메라 움직임도, 알록달록한 색감도 딱히 없다. 오히려 어둡고 처연해서 아름답다. 매사 서툴고 불안해서 아름다운 청춘처럼. 조명보다 자연광에 의지하고, 바람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해내며 와타나베의 사랑과 방황의 행적을 효과적으로 스크린에 돋을새김 한다. 고통을 견뎌내며 마음에 굳은살을 만들어가는 와타나베의 모습은 조밀한 영상으로 더욱 공명한다.
감독은 트란 안 훙이다. 1993년 데뷔작 '그린파파야 향기'로 서른 한 살 나이에 최우수 신인에게 주어지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고, 1995년 '씨클로'로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차지했던 이 재능 많은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은 여전히 탐미주의자의 기질을 발휘한다.
당시 시대의 불온한 공기까지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전공투(전학공투회의의 약자로 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을 이끈 조직)로 대변되는 시대상과의 불화는 와타나베가 겪는 방황의 한 단초. 깃 넓은 셔츠처럼 시대 설명을 위한 단순 장식품으로만 소비될 수 없는 소재다.
그리고 자막에 대한 유감 하나. 전공투 대신 한국 학생운동단체였던 전대협이란 단어가 불쑥 등장한다. 전공투를 모르는 관객들을 위해 전대협을 대신 썼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를 관객들이 모를까 봐 국가정보원으로 대체하진 않는다. 사실까지 왜곡하는 자막의 과잉 친절을 관객들이 과연 원할까. 관객들, 궁금하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며 배운다. 2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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