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김모(70)씨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분당서울대병원 안과를 찾았다. 김씨는 녹내장으로 이미 오른쪽 눈을 실명한 상태에서 왼쪽 눈마저 말기 녹내장과 백내장을 앓으면서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력을 잃었다. 김씨를 검사한 김태우 안과 교수는 "왼쪽 눈의 경우, 녹내장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백내장 수술을 하면 완전 실명만은 막을 수 있다"며 수술을 권했다. 며칠 뒤 김씨는 무사히 백내장 수술을 받은 뒤 시력을 0.5까지 회복했다.
고난도 백내장 수술 척척, 미미한 시력도 살려
백내장과 녹내장은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백내장은 눈 속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병이고, 녹내장은 시신경섬유가 손상되면서 시력이 나빠지는 병이다. 이 두 가지 안질환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60대 이상 녹내장 환자에서 백내장이 나타날 확률은 50% 정도인데, 녹내장이 있으면 홍채와 수정체가 붙어서 백내장을 수술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이유로 녹내장과 백내장이 함께 생기면 대부분의 의사들은 백내장 수술을 포기하기 때문에 시신경이 살아 있어도 결국에는 실명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김태우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이런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2003년 병원 개원 이래 꾸준히 홍채와 수정체가 유착된 고난도 백내장 수술을 시행해 350여 환자에게 새로운 빛을 선물했다. 김 교수가 수술한 환자 10명 가운데 1명은 녹내장을 동반한 복잡한 백내장 환자다.
김 교수는 녹내장 진단 분야에서도 단연 국내 최고 권위자다. 녹내장은 시신경과 신경섬유층의 변화를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진단하는 가장 유용한 검사는 망막신경섬유층 촬영인데, 이 검사의 정밀도를 유지하려면 촬영 해상도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분당서울대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전자 차트에서 망막신경섬유층촬영의 해상도를 최대한 확보하는 기법을 개발해, 녹내장을 조기에 진단하고 진행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내 의사로는 유일하게 녹내장 전문 저널인 '국제 녹내장 리뷰(International Glaucoma Review)'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망막신경섬유층을 분석·연구하고 녹내장 진단 및 수술법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녹내장은 왜 생기나.
"녹내장은 시신경에 점차 이상이 생겨, 시야가 조금씩 좁아지는 질환이다. 예전에는 안압이 정상보다 높아져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압이 높지 않아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압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녹내장을 진단한다. 녹내장은 대부분 서서히 진행하지만, 갑자기 안압이 높아지면서 눈에 통증이 생기고 두통과 시력저하가 나타나는 급성 녹내장도 있다. 당뇨병성 망막증이나 망막혈관폐쇄증이 있는 경우,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사용한 경우에도 녹내장이 생길 수 있다."
-녹내장은 딱히 증상이 없는데. 어떤 사람들이 주의해야 하나.
"녹내장은 급성을 빼고는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말기에 이르러 시신경이 거의 다 손상된 후에야 눈이 침침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거의 실명된 상태가 돼야 겨우 자각증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게다가 녹내장으로 손상된 신경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녹내장 치료의 목표는 더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물론 치료를 해도 서서히 나빠지거나 실명할 수 있다. 녹내장 발병률은 40대 이후에는 매년 0.1%씩 늘고, 60대 이후에는 그 이전보다 6배 정도 높아진다. 따라서 40세가 넘으면 녹내장 검사를 받는 게 좋고, 60세가 넘으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백내장에 걸리면 녹내장은 더 잘 생기나.
"두 질환 모두 노인성 질환이기 때문에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70세가 넘으면 거의 대부분 백내장이 생긴다. 백내장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중등도 백내장이 있을 때 녹내장이 생기는 것이 문제다. 백내장이 있으면 녹내장이 생겨 눈 기능이 약해져도 기존에 앓고 있던 백내장 때문이라고 여길 뿐, 새로 녹내장이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녹내장이 많이 악화된 말기에 이르러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에는 녹내장을 치료하더라도 대부분 실명한다. 따라서 이미 백내장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가끔씩 녹내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분당서울대병원이 녹내장 진단으로 유명한 이유는.
"녹내장은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신경이 서서히 지속적으로 손상돼 일어나는 병이다. 따라서 초기에 확진을 내리기 어렵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뒤 그 결과를 종합해 녹내장 여부를 가리게 된다. 우리 병원 안과가 녹내장 진단으로 유명한 것?망막신경섬유층 촬영과 판독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망막신경섬유층 촬영은 시신경을 사진으로 찍어 이상 여부를 관찰하는 검사로, 녹내장 을 조기에 진단하는 데 유용하다. 이 때 사진 촬영 이미지가 선명하고 판독 능력이 우수해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 병원 안과는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망막신경섬유층 촬영 이미지를 구현해 이를 녹내장 진단과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녹내장 진단의 정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녹내장 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많은 환자 분들이 녹내장 진단을 받으면 실명이 불가피하다고 여겨 크게 상심하고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녹내장은 빨리 발견해 꾸준히 치료하면 여생 동안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을 끼치지 않는 병이다. 녹내장 진단을 받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꾸준히 치료받기를 바란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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