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의 행보가 거침없다. 지난 대선 때부터 이어져온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선언에 이어 최근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야당 후보들을 지지하기로 공언했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한국노총의 전력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그 중심인물은 이용득(58) 한국노총 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2004~2007년 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낸 뒤 2억원대 연봉의 은행중역 생활을 마다하고 올 1월 한국노총 위원장선거에 출마, 화려하게 노동계로 컴백했다. 취임 이후 이명박 정부가 노동 분야의 최대 치적으로 여기는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와 복수노조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기 위해 야당들과 손잡고 노조법 개정에 나섰으며 전임 집행부 시절 소원하게 지냈던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모색하며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이 위원장의 행보에 노사정(勞使政)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14일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표로 반(反)노동자 정당을 심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6년 위원장 시절에는 외자유치에 나서기도 했는데 지금은 갑자기 투쟁하겠다고 하니, 정부에서는 이 위원장을 '럭비공'같다고 한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명박 정부는 20~30년 전 독재시절로 노동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 내가 럭비공이 아니라 자기들이 럭비공 아닌가."
-정부에서는 타임오프제나 복수노조를 시행해본 뒤 문제가 있으면 고치자고 한다.
"정부가 그런 말을 했다면 무책임, 무능력의 극치다.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한데 고통을 당해본 뒤에 고치겠다는 것인가. 이 정권은 사고를 당하고야 수습에 나선 일본 원전사태에서 배운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통치능력이 밑바닥 수준이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는 2007년 자신이 위원장직에 있을 때 결정한 것 아닌가. 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었는데, 본인 책임은 없나.
"당시 나는 현장에서 조합원들에게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가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좋은 학습경험이 돼서 그게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무렵 가치관 없는 정권이라 앞으로 어려워지겠구나 생각은 했다."
-노조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타임오프제로 인한 전임자 축소, 복수노조 시행으로 인한 조직력 약화를 걱정하기 때문 아닌가. 이는 '노동귀족'들만의 관심사 아닌가.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전임자다. 임금인상을 통해 실질적으로 전임자 축소를 막은 기아차처럼, 민주노총 같은 경우 자체투쟁동력으로 이를 저지해내는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조직의 성격상 법 개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여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실질적으로 노조법 개정이 가능한가.
"여당이 우리 문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반면, 야당은 우리의 문제의식을 당론으로 받아들여줬다. 노조의 가장 큰 무기인 '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당선된 뒤 현장에 휘발유를 붓겠다고 했다. 총파업을 염두에 둔 것인가.
"위원장이 명령한다고 현장에서 당장 총파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파업은 분위기가 고조돼야 할 수 있다. 당선된 뒤 전국순회를 했고 5월의 노동자대회 등으로 투쟁동력을 높이고 있다. 지금은 현장의 분노에 불이 붙어가는 시기다. 표로 심판할 것이다. 조합원들의 표는 휘발유가 아니라 핵미사일이 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공동투쟁본부를 만들 것이다. 5월 1일 노동절 공동집회는 절차상 불가능하겠지만 행사를 양쪽이 모두 서울에서 하기 때문에 공동의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 백혈병 노동자 사망사건 은폐 등 삼성의 반노동적 행태를 양 노총이 공동으로 사회문제화할 계획도 있다."
-'용팔이'라는 별명에 불만은 없는가.
"품격있는 노사관계를 만들자는 사람으로서 가치관 없는 투쟁가라는 의미라면 사양이다. 그러나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명확한 가치관을 갖고 싸울 때 싸우는 사람의 의미라면 고맙게 받아들인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사진=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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