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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홍어와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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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홍어와 독도

입력
2011.04.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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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서는 홍어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독도 문제와 홍어는 관련이 깊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홍어는 잘 삭혀야 제 맛이다. 바로 홍어를 삭혀 먹게 된 유래와 독도 문제의 근원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동ㆍ서ㆍ남해안을 가리지 않고 왜구가 창궐했다. 적게는 수 척, 많게는 수백 척의 배를 타고 출몰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양민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거나 납치하고, 부녀자 겁탈, 방화 등 그들의 행악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북한의 자국민 납치 문제라면 치를 떨지만 수백 년에 걸쳐 자행된 선조들의 납치ㆍ살인ㆍ방화ㆍ약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왜구의 노략질에 섬 비워 대응

왜구 토벌에 한계를 느낀 고려와 조선 조정은 외딴 해안 마을이나 주요 섬의 백성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폈다. 이른바 공도(空島) 정책이다. 당시 영산현으로 불린 흑산도 일대 섬주민은 지금의 나주시 영산포로 이주했다. 영산포와 영산강의 지명은 바로 영산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산현 공도 조치가 왜구의 창궐보다 조금 앞서 발생한 삼별초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삼별초군과 섬주민을 분리하기 위해 취해졌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여말 선초 왜구 창궐이 도서지역 주민의 본격적인 내륙 이주의 주된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흑산도를 떠나온 주민들은 겨울철 농한기에는 영산강을 따라 배를 타고 고향 바다에 나가 특산물인 홍어 등의 물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뱃길이 돛단배로 사흘에서 닷새가 넘게 걸렸다. 그 사이 홍어가 변했다. 아까워 버리지 않고 먹어 봤더니 냄새는 좀 고약했으나 탈도 나지 않고 괜찮았다. 그렇게 입맛이 들린 뒤로는 일부러 삭혀 먹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홍어를 발효시키는 기술은 흑산도나 목포보다는 영산포가 단연 최고다.

1403년(태종 3년)에 단행된 울릉도 백성의 내륙 이주도 왜구의 노략질을 피하기 위한 공도 정책의 일환이었다. 1800년대 후반 다시 주민이 들어가 살기까지 400년 넘게 울릉도는 입도가 금지된 섬이었다. 일본은 바로 이 점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다. 울릉도 같은 큰 섬도 오랫동안 버려둔 나라가 거기서 87㎞나 떨어진 작은 돌섬에 대한 영토 개념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울릉도를 비워놓지 않았다면 맑은 날 빤히 바라다 보이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주장을 전혀 엉뚱하다고만 할 수 없다. 삭힌 홍어의 유래처럼 독도문제도 공도정책에 뿌리가 있다.

하지만 공도정책은 어디까지나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비워 둔 섬 자체는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울릉도 공도정책을 시행한 직후인 1407년 대마도 도주가 그 동안 잡아간 조선 백성들을 돌려보내고 토산물을 바치면서 대마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이주해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태종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태종과 세종조의 기록에는 울릉도에서 '맑은 날 볼 수 있는' 우산도, 즉 독도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다. 독도를 분명하게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떤 때는 '역사적으로 고유 영토', 또 어떤 때는 '무주물 선점' 논리로 편리하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바다 경시하면 큰 대가 치른다

그러나 섬과 바다를 소홀히 하고 힘써 지키지 않은 선조들의 근시안이 독도 논란에 빌미가 되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와 섬의 가치를 일찍 깨쳤다면 부산에서 49㎞밖에 안 되는 대마도가 일본땅일 수가 없다.

바다 경시 풍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육군에 비해 해군은 턱없이 홀대를 받고, 한때 무르익던 대양해군의 꿈은 '연안도 못 지키는 주제에'라는 자기비하로 흔들리고 있다. 해양을 주제로 한 여수세계박람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는 높지 않다. 바다를 소홀히 하면 큰 대가를 치른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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