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四書)의 첫머리에 놓이는 은 그 가르침을 '자신에게 부여된 선천적인 도덕성을 밝히고(明明德), 다른 이들 역시 그렇게 하도록 한다면(新民) 모든 사람이 선량한 사회에 도달할 것(止於至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은 고대 중국의 경전 의 한 편명에 불과했지만 중국 송대의 신유학자들이 그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여 사서 가운데 하나로 독립시켰다. 의 가치를 가장 깊이 고민한 철학자는 주희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의 구절들을 해석하는데 전력하였다.
왜 지금 이 중요한가. 의 가르침은 자신의 덕성을 밝히는 데 머물지 않고 공동체를 책임지려는 의무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인간에게 부여된 밝은 덕성을 전근대의 삼강오륜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덕목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오늘날 요구되는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옹호하는 시민적 덕성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면, 의 가르침은 실제로도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일찍이 주희는 명덕(明德)을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천부적으로 지닌 도덕적 자질로 이해했다. 모든 인간이 군자가 될 수 있는 바탕이자 근거이다. 물론 명덕이 근원적으로 공동체의 가치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유학에서는 명덕을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된 자율적인 도덕성 일반으로 해석하면서, 나아가 공공선의 확산에 기여해야 하는 근거로 보고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도덕성의 발견과 수련이라는 개인적 활동을 우선하면서도, 이를 사회적 공공성으로 확장하는 제가와 치국의 정치 활동으로 연결한다. 이처럼 명명덕은 항상 개인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 목표는 사회의 보편적 정의에 있으며, 다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반드시 개인의 수양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사회 정의에 대한 책임감은 신민의 과정으로 표현된다. 신민은 개인적 덕성의 함양과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지선(至善)한 공동체의 건설이 쉽지 않기 때문에 준비된 조처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의 덕목인 공공선을 구성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 공동체에 의해 공유되는 몇 가지 가치들을 모든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려는 의도 자체가 용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리어 신민이란 개인들의 자율적인 도덕성이 실제 상당히 풍부하고 안정된 공동체의 문화와 가치 구조 속에서 보다 잘 형성된다는 사실을 전제한 행위이다. 우리는 신민을 통해 개인에게 가까운 특정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세계 인류 공동체는 너무도 멀고 추상적이다. 심지어 국가 공동체 역시 너무도 관료적이고 비인격적이라서 쉽게 다가서거나 느끼기 어렵다.
국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추상적인 감각만으로는 정치 활동과 시민사회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 때문에 점증하는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제가(齊家)와 치국(治國) 사이에 위치한 중간 수준의 '공동체'들을 경험하고 이를 체화하는 신민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인 의미의 신민이 이루어진다면, 명명덕의 개인적 수준으로부터 치국평천하라는 국가 정치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시민적 연대의 활성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전의 가르침을 단지 오래되거나 낡아빠진 옛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오늘날의 지혜로 되살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요즘 을 다시 읽다가 든 소회이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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