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순 할머니는 살고 싶었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의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은 뒤 할머니는 보건소와 시립병원을 오가다 8시간 만에 지하철 6호선 응암역 승강장에 주저앉았다. 119구급대가 10분 만에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은 멎었다. 사인은 영양실조와 폐결핵. 3형제를 키워내고 지난해부터 6㎡ 남짓한 낡은 여관방에서 쓸쓸히 지내던 김 할머니가 일흔여덟 고달픈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사망사실은 이날 밤 서울 은평경찰서 변사 사건 대장에 짧게 기록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제도의 허점 및 기계적인 적용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은 실리지 않았다.
김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한 건 며칠 전. 고열과 기침을 참다 못한 할머니는 13일 오후 10시께 근처에 사는 큰 아들(55)을 불러 병원에 갔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까지 링거만 맞고 다시 여관방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눈이 풀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본 여관 주인이 보다 못해 할머니를 부축하고 길을 나섰다.
동네병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았지만 할머니는 치료비가 걱정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특별구호대상자로 지정돼 매달 지원금으로 받는 2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방값을 내고 남는 몇 만원으로는 식비도 빠듯했다. 그렇다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큰 아들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어 할머니는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삼양동주민센터에서도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 없었다. "보건소에서 결정할 사안이니 번동에 있는 강북구보건소로 가라"는 게 전부였다. 오후 1시께 도착한 강북구보건소 직원은 "시립서북병원에 가서 알아보라"고 김 할머니를 또 떠넘겼다. 시립서북병원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했다.
동행한 여관 주인은 "'다리까지 풀려 비틀거릴 정도로 증세가 심해진다. 내가 돈을 내겠으니 아무 약이나 처방해달라'고 간호사에게 요구했지만 '검사결과 없이 처방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서북병원 관계자는 "치료를 해드리려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보니 며느리 건강보험에 김 할머니가 올라 있었고, 이런 경우 치료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냥 가셨다"고 해명했다.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독거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주민센터, 보건소, 시립병원 등이 제도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다며 발을 빼는 사이 할머니는 점점 죽음의 문턱으로 들어서게 된 셈이다. 큰 아들은 일이 바빴던 탓인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그는 거리에서 숨졌다.
고인은 슬하에 아들 셋을 뒀다. 11년 전 둘째가 병으로 사망하자 3년 만에 남편까지 세상을 떠났다. 미아동의 큰 아들 집에서 살다가 2010년 3월께 집을 나왔다. 한 이웃은 "집도 직업도 없이 PC방을 전전하는 셋째(46)에게 계속 용돈을 주는 것 때문에 큰 며느리와 갈등이 심해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할머니는 인근 교회에서 셋째와 함께 생활했지만 아들의 술주정이 심해 결국 홀로 살게 됐다.
김 할머니와 힘겨운 하루를 보냈던 여관 주인은 "유난히 붙임성이 좋았는데 외롭게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북병원에서 나와 식당에서 5,000원짜리 팥죽 한 그릇을 사서 나눠 먹었지. 몇 숟가락 뜨지 못하더라고.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맛난 것이라도 사 먹일 것을."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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