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51) 감독이 돌아왔다. 2008년 '비몽'을 마지막으로 칩거에 들어갔던 김 감독은 신작 다큐멘터리 '아리랑'이 5월 11일 개막하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되면서 부활을 알렸다. 각종 영화제 단골손님이었던 김 감독의 칸영화제 진출은 2007년 '숨'의 경쟁 부문 초청 이후 4년 만이다.
최근 잇따른 경제적 시련과 의도치 않은 구설을 딛고 일어선 김 감독의 복귀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자신만의 독특한 제작 방식과 연출 형식을 지닌 김 감독은 2004년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사마리아')와 베니스영화제('빈집')에서 감독상을 각각 받으며 국내 대표적인 예술영화 감독으로 꼽혀 왔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뒤 13년간 15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다작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탈 많고 말 많았던 3년
김 감독의 지난 3년은 다사다난했다. 2008년 김 감독의 영화사 김기덕필름이 제작하고,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는 영화다'의 성공이 역설적이게도 시련의 시작이었다. 제작비 6억5,000만원을 들인 저예산영화 '영화는 영화다'는 13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30억원 가량의 순익을 기록했다. 김 감독이 관여한 영화로는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영화는 흥행했지만 김기덕필름은 투자 원금인 2억원만 회수했다. 영화 배급을 대행했던 S사가 도산하면서 수익금을 제대로 정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 지인에 따르면 "당시 김 감독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가 흥행하던 당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벌었으니) 이젠 내 영화도 규모를 좀 크게 만들고 싶어졌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었다. 수익금 회수를 놓고 김 감독은 아직 소송 중이다.
불운은 계속됐다. 김 감독의 연출부 출신 신예 A 감독이 2009년 그와 함께 영화를 준비하다 그를 배제하고 충무로 주요 영화사와 계약하면서 시련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한 매체가 이 내용을 바탕으로 뒤늦게 '마이스터 김기덕 감독, 배신당하고 폐인됐다'는 제목의 선정적 보도를 하며 그는 원치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A 감독에 대한 네티즌의 비난이 빗발치자 김 감독은 해명 글을 통해 "몇 달 동안 말 못하는 공황 상태에 있었다… (A 감독이) 수차례 사과를 했고 나는 이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칸 진출작 내용에 시선 쏠려
신작 '아리랑'은 김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지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연출부 출신 한 감독이 "그런 영화가 만들어졌는지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김기덕필름의 전윤찬 프로듀서는 "김 감독이 칸영화제 상영 전까지 '아리랑'에 대해 아예 이야기도 하지 말라 당부했다. 개봉할 생각 없이 만들어졌고 현재 국내 개봉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아리랑'의 해외 판매를 대행하는 화인컷의 김윤정 팀장은 "김 감독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모노드라마 형식"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충무로에선 "그를 홀대해 온 한국 영화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떠돈다. 김 감독의 한 지인은 "김 감독이 의도치 않게 다른 영화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A 감독에 대한 해명 글에서 김 감독은 "나를 너무 초라하게 만든 그 메이저(영화사)의 태도와 그 과정을 조정한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돈으로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꼭 깨닫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래저래 김 감독의 복귀는 당분간 영화계의 화제가 될 전망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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