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그 동안 레벨 5를 유지해왔던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의 등급을 두 단계 높여 최고 단계인 레벨 7로 올린 것은 방사성 물질의 확산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은 그 때문에 지지부진한 원전 복구작업이 앞으로 더 난항을 겪을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최악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은 이미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달 30일 후쿠시마 반경 30㎞에 위치한 이타테무라(飯舘村)의 토양에서 체르노빌 원전 주변 마을을 초과하는 방사선량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지난 달 11일 사고 직후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레벨 6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 레벨 4로 규정한 데 이어 지난 달 18일 레벨 5로 한 단계 올리는데 그쳤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 정부의 결정이 늦어진 것은 중간단계인 레벨 6을 거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12일 보도했다. 원전사고와 관련된 국제평가척도(INES)에 따르면 레벨 6의 기준은 시간당 방사선 유출량이 수천~수만테라베크렐(Bq), 레벨 7은 수만테라Bq 이상으로 규정돼있다. 일본 총리 자문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현재 방출되는 요오드 131이 시간당 최고 1만테라(1조)Bq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레벨 6과 7의 경계선에 해당한다.
산케이 신문은 지금도 방사성 물질 유출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가 레벨 7의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향후 해외 협력을 얻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도쿄(東京)전력 마쓰모토 준이치(松本純一) 원자력입지본부장 대리는 “원전 내 방사성 물질이 모두 유출될 경우 체르노빌 사고를 능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반면 후쿠시마 원전의 현재 상황이 체르노빌과 같은 레벨이지만 내용면에서는 크게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이날 외신기자와의 기자회견에서 “등급을 올렸다고 해서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이 더 악화한 것은 아니다”며 “지난달 중순 이후 대기 중 방사성 물질의 양은 줄어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7등급으로 올리기 전부터 최악의 사태를 상정, 대처를 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본 언론조차 “이번 조정으로 일본 정부의 대외적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당초 사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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