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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분당 乙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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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분당 乙의 비애

입력
2011.04.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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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주 뒤 우리 동네에선 거물들의 맞대결이 펼쳐진다. 4ㆍ27 재보궐선거. 여당의 전 대표(강재섭 후보)와 제1야당의 현 대표(손학규 후보)가 맞붙는 그야말로 '빅 매치'가 분당을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것이다. 나는 분당갑 지역에 사는 터라 투표권은 없지만 갑이나 을이나 어차피 같은 구(區), 동일 생활권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거에 관심이 간다.

대표선출권 박탈 당한 주민들

원래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지역구였던 분당을은 이미 6개월 전 국회의원을 냈어야 했다. 임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간 게 작년 7월이니까, 지난 10ㆍ27 재보궐선거에서 새 국회의원을 뽑는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명쾌한 설명도 없이 여야는 임 실장의 국회의원 사직처리를 질질 끌었고, 결국 선거는 10ㆍ27을 건너뛴 채 이번 4ㆍ27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주민들로선 분노할 일이었다. 여야의 무책임과 무원칙 때문에 자신들의 대표(국회의원)를 선출할 수 있는 기회를 6개월이나 빼앗겼다. "싸우기만 하는 국회의원 한 명쯤 없다고 대수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냥 정서일 뿐, '대표 없는 상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재보궐 선거가 6개월 지연된 것을 두고, 미국 독립전쟁의 이 거창한 문구까지 들먹이는 게 좀 오버일 수는 있겠다. 대표를 못 뽑았으니 세금도 내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여야의 정치적 계산으로 인해 가장 기초적인 국민 권리(대표 선출권)를 박탈 당했고, 이로 인해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뒤늦게 치러지는 것이지만, 이번 4ㆍ27 선거 역시 탐탁지 않은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유권자는 이번에도 보이질 않는다. 그저 맞대결을 펼칠 거물 정치인만 있을 뿐, 향후 정국 주도권이나 내년 총선ㆍ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식의 정치판세적 의미만 부여될 뿐이다. 지역주민의 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손학규)의 정치적 시험대 혹은 한 차례 좌절을 맛본 여권 중진(강재섭)의 재기 무대로만 비치고 있는 현실이다.

선거는 일종의 시장행위다. 정치소비자(유권자)가 여러 정치상품(후보) 가운데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정상적인 자유시장라면 수요자가 중심에 서야 하지만, 이번 재보궐선거는 시작부터 공급자 우위로 전개됐다. 소비자로부터 최종 선택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여 최선의 상품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손학규 후보는 막판까지도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는 모습만 보였고 강재섭 후보는 '정운찬 대타'이미지만 갖게 되고 말았다. 아무리 대정객이면 뭐하나, 정말 이 지역에 필요한 인물인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지역에 관심과 애정은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하는 유권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선거에서 배울 건 없다

지금 동네 곳곳엔 4월 27일 투표를 독려하는 선거관리위원회 포스터가 붙어있다. 한 대가족이 아이들 손을 잡은 채 밝게 웃으며 투표함으로 걸어가는 사진이다. 실제로 요즘 선거 때면 투표장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부모들이 많은데, 사실 선거현장에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교육은 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투표가 전부는 아닐 터. 과연 아이들이 물어본다면 이 선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금을 내는 국민이면서도 6개월간이나 대표 없는 상태를 강요 당한 현실을 뭐라고 얘기해 줘야 할까. 출마한 후보자들이 이 동네를 위해 일한 것을 말해 달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분당을 선거는 지역일꾼을 뽑는 게 아니라, 아주 큰 정치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대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자꾸만 시니컬해지는 이유. 분당을 선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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