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동선수를 거액을 주고 스카우트해왔는데, 그가 영 능력발휘를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인간, 알고 봤더니 완전히 먹튀네.'
'먹튀'란 '먹고 튀기'의 줄임말이다. 처음에는 프로 스포츠에서 고액을 받고 이적한 선수가 대우에 걸맞은 활약을 하지 못하거나 기대만큼 열심히 경기에 임하지 않아 팬들과 구단을 실망시키는 경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 신조어는 처음 의미와는 달리 그 쓰임이 대폭 확대되어 '이익만을 취하고 성과는 내지 못하는 것'에 두루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실망스런 미팅, 사기성 결혼, 과외를 빙자한 사기성 아르바이트, 치고 빠지는 유동성 자본 나아가 책임 회피를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이중에서도 특히 '먹튀 자본'이란 기업에 투자는 하지만 그 기업의 가치를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고 단순히 자산 증식만을 노리는 투기성 자본을 가리킨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왔던 글로벌 자본들은 단순히 자기의 이익만을 취할 뿐 국내 시장에는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내지 않아 먹튀자본으로 불렸다. 최근의 예로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 자동차,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를 들 수 있다.
먹튀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사생아이자 부도덕한 심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한몫 잡아 여생을 놀고먹겠다, 즉 땀은 흘리지 않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심보는 자본주의를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건강한 노동윤리, 기업윤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도박꾼이나 도둑놈의 심리인 것이다. 따라서 먹튀는 사회 나아가 세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악일 뿐이다.
그나마 크게 다행인 것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먹튀라는 말을 아주 듣기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프로리그의 선수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도 바로 먹튀 선수라는 낙인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요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많이 타락했다고는 해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도덕률이 살아 있어서다. 즉 땀을 흘리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불로소득이나 흘린 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이득을 취하는 투기적 이익을 여전히 혐오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먹튀라는 사회적 지탄은 곧 도둑놈,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과 같다. 익명성으로 위장된 투기자본이야 수치심 같은 걸 느끼지 않겠지만,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설사 그 누군가가 마음속으로는 먹튀를 꿈꾸더라도, 막상 먹튀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거의 모든 이들이 먹튀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오늘날과 같은 부도덕의 시대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양심이 의연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희망적인 신호로 해석해도 괜찮지 않을까.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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