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의 잇단 자살, 연구비 횡령 논란, 총장의 부당 인센티브 수령 등으로 불거진 카이스트(KAISTㆍ한국과학기술원) 위기상황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서남표 총장의 거취와 개혁방향에 대한 의견도 엇갈려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기 어려운 형국이다. 카이스트 교수, 학생과 교육 전문가들의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들어봤다.
"문제는 속도조절과 관리"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는 서 총장의 대표적 개혁제도는 차등등록금제, 100% 영어강의, 교원 정년심사 강화 등이다. 각각 제도들에 대한 구성원의 의견은 극명하게 나뉜다.
11,12일 각 학과단위로 이뤄진 사제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영어 강의 하나를 놓고도 다양한 의견을 내보였다. 화학과 사제간담회에 참석한 3학년 A(22)씨는 "자살 사건을 계기로 무조건 개혁정책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에 불만이 많다"며 "영어강의만 해도 영어로 안 하는 교수에게 페널티를 주거나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 등만 개선하면 장점이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부 학생들은 "개혁을 너무 극단적으로, 성급하게 해온 점이 문제"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창환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학 교육경쟁력 강화가 중요한 것은 맞다"며 "국내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학생들을 경쟁체제에 내맡기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학생을 열심히 가르치고 학교 당국이 학생들을 섬세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런 철학을 카이스트가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 스스로에게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학습 성과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11일 열린 교수협의회 비상총회에서도 개혁 방향에 대한 쓴 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상당수 교수는 "개혁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대 의견을 개진했지만 무시됐다, 지나치게 조급했다"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또 "총장의 개혁 내용도 문제지만 그 추진 방식이 매우 성급하고 미숙한 데다 여론 반영이 부족했다.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보직교수 역시 평교수들의 의견을 전하거나 (총장에게) 충고하지 못했다", "개혁위를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의견에 총장이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약속 받아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냈다.
"순위 연연 말고 귀 열어야"
학내 구성원과 전문가들은 카이스트 사태에는 대학 평가의 지표를 지나치게 의식한 카이스트의 개혁 방향과 이를 부추긴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보았다. 100% 영어 수업을 불과 3년여 만에 확대한 것이 외국인 교수와 학생 숫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 대학순위 상승을 이끄는 성과를 내보이기 위한 행보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순남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대학평가기관에서 외국인 학생과 교수의 비율을 주요 지수로 꼽고 있는 것은 여러 나라의 문화와 지식이 공존하는 캠퍼스에서 공부한 학생이 창의인성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위해 100% 영어 수업을 강제한 점은 지나친 조치였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의 대학과 법인의 관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희종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쟁 속에 내몰린 것은 결국 국립대 법인화의 구조적 문제"라며 "대학 운영이 재단의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교수들의 의견 개진도 안되고 교육적이지 못한 제도가 쉽게 도입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총장 사퇴의 문제가 아니라 국립대 교육 공공성의 차원에서 학교운영 구조를 재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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