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 성적 대학 출세. 한눈도 팔지 마. 놀지도 마. 보충수업 자율학습 중간고사 기말고사 우리한텐 이게 전부야. 지겨워. 숨이 막혀.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공부 공부.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냐. 자유롭고 싶어. 지겨워. 숨이 막혀!”
올들어 네 번째로 카이스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7일 오후 8시께 서울 성북구 삼선동 공연집단 현의 30여평 남짓한 뮤지컬 ‘카르페디엠’ 지하 연습실에 울려 퍼지는 노래 한 토막. 학생들에게 미래만 바라보며 현재를 포기하기보다는 현재에도 충실하라는 메시지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은 놀랍게도 전ㆍ현직 교사다.
연출사진을 찍으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8명의 교사들이 눈에 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연기가 영락없는 진짜 교사다. 이들은 왜 교단을 뛰쳐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할까.
2007, 2008년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연습에 참여한 박근우(서울 염광중 영어교사)씨는 “꿈을 좇으라고 하고 싶지만 현실적 제약 때문에 고민하는 교사의 인간적 고뇌도 관객들에게 솔직하게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색하고 쑥쓰러운 모습이 역력하지만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반주에 맞춰 노래연습을 하는 백발의 교장과 전직 교육장도 있다. 교장 역으로 출연하는 이재근(북서울중학교 교장)씨와 홍승표 전 서울시 동작교육청 교육장은 “나중에 성공하고 나서 즐기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살아 보니 현재 괴롭게 살면서 늙어서 즐거운 게 아니더라”며 “하나하나 과정이 중요한데 결과만 중요시하는 입시 위주 교육에 찌든 학생들에게 살아가는 과정이 다 인생이라는 점을 알려 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연습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전직 장관도 있다. 5월 10일께 교장역으로 깜짝 출연하는 김명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999년 직접 연출한 연극 ‘유랑의 노래’ 이후 직접 무대에 서기는 12년 만이고 뮤지컬 연기는 처음이다.
그는 “국립극장장을 할 때 초연을 준비했던 작품인데 내용이 재미 있게 꾸며져 있고 공감 가서 출연을 결정했다”며 “요즘 뮤지컬이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면서 외국 작품만 소개되고 창작정신이 없어지는데 좋은 주제를 유지한 이런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8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막을 올리는 뮤지컬 ‘카르페디엠’은 명문대 진학만이 유일한 목표인 명문고에 자신만의 꿈을 찾으라는 신참 교사 김광(배우 박형규 분)이 부임하며 학생들과 밴드를 만들어 콘서틀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철저하게 상업화한 뮤지컬 시장에서 아직도 ‘뮤지컬은 예술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재성(동아방송예술대 교수) 연출가와 그가 중심이 된 공연집단 현이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로 불릴만한 진한 주제의식을 담았다. 5월 8~17일, 6월 23일~7월3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02)3775_3880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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