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카이스트] 근조리본 단 교수·학생… 애도 속 변화 요구 "제자들 아픔 공감하지 못한 것 용서해 주길"학내 사이트선 총장 사퇴 놓고 찬반 격론학과별로 사제 간담회 소통ㆍ위로의 시간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편히 쉬세요. 남아있는 우리가 노력하겠습니다."
학생 4명의 잇단 자살로 전면 휴강이 선언된 11일 카이스트(KAISTㆍ한국과학기술원) 학생과 교수들의 얼굴에는 비탄 애도 다짐 결의 등 다양한 표정이 뒤섞였다. 캠퍼스가 무겁게 가라앉은 이날 교내에선 다양한 단위의 구성원 회의가 열려 새로운 카이스트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한 중지가 모아졌다.
"새로운 리더십 필요"
카이스트 교수협의회는 이날 오전 운영위원회를 열고 오후 1시께 비상총회를 소집했다. 550여명 교수 회원을 대상으로 회람을 돌린 것은 총회를 불과 3시간 앞둔 시간이었지만 총회장인 교내 창의관은 220여명의 교수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생명과학기술대학 C교수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200여명의 교수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경영대학 등 서울캠퍼스 소속 20여명의 교수 역시 화상회의시스템으로 총회에 참여했다.
1시간40분 가량 열띤 논의를 이어간 협의회는 회의 뒤 채택한 'KAIST 교수협의회에서 드리는 글'을 통해 "강의실에서 만나면서도, 자살이라는 극한의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린 학생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던 우리 교수들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지속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을 존중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어 발전의 방향을 찾아간다는 원칙이 자리잡고 있어야 하고, 지금 카이스트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서 총장의 개혁에 결함이 많았지만 서 총장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지휘부의 철학과 태도에 미흡함이 있었다는 판단에서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표현을 채택했다"고 논의 과정을 전했다. 학부 총학생회도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서 총장은 경쟁위주 제도개혁의 실패를 인정하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총장 퇴진 찬반 논쟁
카이스트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서 총장의 퇴진 여부를 놓고 학생들이 격론을 벌였다.
한 학생은 "연이은 자살의 결론이 무엇이든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 서 총장은 그만 떠나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학생도 "서 총장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주장은 카이스트라서 나올 수 있는 독특한 발상 가운데 하나"라고 꼬집었다.
반면, 서 총장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의견도 속속 올라왔다. '총장님이 뭘 잘못하셨죠'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학생은 "영어 강의 도입, 차등 수업료 부과 등은 다 알고 입학한 것 아닌가. 본인이 알고 희망해 지원한 학교에 대해 왜 피해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서 총장을 두둔했다. 또다른 학생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도자가 떠난다고 생기지 않는다. 총장님의 사임과 같은 선택은 최악"이라고 주장했다.
"제자들아, 많이 아팠구나"
이날 오후에는 각 학과단위에서 사제 대화도 이어졌다. 카이스트 산업경영동 1501호에서는 산업경영학과 교수 10명과 학생 50여 명의 열띤 대화가 2시간 20분 가량 이어졌다.
06학번 김모군은 "4년 내 졸업을 못하면 기숙사도 못 들어가고, 장학금 혜택도 사라진다"며 "교수님들은 대학 다닐 동안 연애도 하고, 한 번쯤 책 대신 악기를 잡아보라고도 하지만, 과연 그게 카이스트에서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며 말했다. 김군의 호소에 교수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상념에 빠졌다.
07학번 조모군은 "학교가 글로벌이라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영어수업을 강조하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외국인 학생들과 같이 어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영어수업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04학번 한 학생은 "2010년 봄 학기에 모 교수님께서 중간고사 전에 한국어로 핵심 요약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고 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해 영어수업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7일 세상을 등진 박모군과 함께 수영동아리 활동을 한 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학생은 "우리는 정말 가까웠지만 그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며 "자살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모니터링을 넘어서 학교 측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수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억 학과장은 "그 동안 소속감을 많이 심어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며 "오늘을 계기로 친밀함을 유지해가고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서로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자들을 다독였다.
대전=김혜영기자 shine@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