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두 달이 걸렸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호주의 토착 원주민 말로 삶과 자연, 조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투박한 노래로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한 남자, 그러고는 갑자기 고향인 호주 북부의 외딴 섬 엘코로 숨어버린 한 뮤지션을 찾아내는데 말이다.
제프리 구루물 유누핑거(41). 그는 6만년의 역사를 지닌 호주 원주민 구마티족 출신으로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다. 원주민 보호지역인 엘코 섬에서 옛 이야기와 전통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그는 2008년 첫 앨범 ‘구루물(gurrumul)’을 들고 세상에 나왔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원주민의 말 욜릉구어로 된 노래들에 대한 첫 반응은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는 언어와 인종을 뛰어넘어 사람을 울리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 해 4월 호주 아이튠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더니 미국과 유럽 등에서 1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영국의 음악 전문지 ‘송라인즈’에서 2009년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됐고, 스팅, 엘튼 존 등 팝 거장들과의 공연도 이어졌다. 편안한 포크 기타음을 기본으로 한 따듯한 그의 음악에 대해 영국 더 타임스는 “추운 밤 장작불 같은 위안을 주는 음악”이라고 평했다.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돌며 공연을 하던 구루물은 지난해 7월 “아프다”는 말만 남긴 채 공연을 모두 취소하고 고향인 엘코 섬으로 돌아가 버렸다. “명성이나 음반 순위에 관심이 없다. 우리 부족과 삶에 대해 노래할 뿐”이라던 그의 말에서 갑작스런 잠적의 이유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1월 국내에 ‘구루물’ 음반이 발매된 뒤 바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음반 작업을 함께 한 음악감독 마이클 호넨을 통하고도 이메일 답장을 받는데 두 달이 걸렸다. 구루물의 아버지들(아이들을 공동양육하는 그의 부족에선 부(父)계가 모두 아버지다)이 그를 찾고 인터뷰하는데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했다. 인터뷰는 욜릉구어-영어-한국어의 번역 과정을 거쳤다.
“그냥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서 쉬었어요.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들을 도시가 아닌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에서 보내야 했어요.”
구루물은 지난해 엘코 섬으로 돌아갈 때 “너무 아프고 지쳐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제 자신과 몸이 아무런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했다”면서 “그게 꼭 많은 투어가 준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라며 다시 투어를 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고 전했다.
그의 음악의 원천은 가족이다.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과 음악이에요.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음악을 하고 투어를 하고 공연을 할 아무 이유가 없었겠죠.” 앨범 ‘구루물’에 실린 ‘아버지’ ‘나의 딸’ 등도 그렇게 나왔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2,000명 가량이 모여 사는 엘코 섬에서 다 함께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민꽃게와 거북이 등 전통음식을 나눠 먹으며 사는 삶”이라고 강조했다.
구루물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절망하거나 슬퍼한 적이 없다”면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남들보다 조금 오래 걸린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제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 사람들이 자기 집 주변에 서 있다가 제가 어디서 언제 돌아야 할 지를 말해주곤 했어요.” 그런 아름다운 기억은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지’라는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지/ 왜 그런지는 모른다네/ 하지만 신은 알지/ 왜냐면 신은 나를 사랑하니까.’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거꾸로 들고 친다. 정식 기타 교육을 받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사용해보지 못한 탓이다. 음악칼럼니스트 황윤기씨는 “이러면 높은 음부터 낮은 음까지 기타 줄의 위치도 바뀐다. 기타 연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자세”라고 말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은 뭘까. 구루물은 “내가 음악적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루물은 고향에서 준비한 두 번째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호주판 롤링스톤지는 이번 달 표지에 ‘호주의 가장 중요한 목소리’란 타이틀과 함께 구루물의 사진을 실었다. 구루물은 “한국에서 제 음악을 좋아해 주신다니 너무 행복하면서도 놀랍다”며 “언젠가는 한국에서 내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