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회사를 운영하는 A회장. 소유선박이 160척에, 회사자산은 10조원이 넘고 본인도 1조원대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유령 회장'이다. 한국에 거주하면서 사업을 해왔지만, 비거주자ㆍ해외법인으로 위장했다. 이유는 하나,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 그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그가 빼돌린 소득은 근 1조원. 하지만 국세청 추적에 결국 꼬리가 잡혔고, 그에겐 해외탈세 사상 최대금액인 4,100억원의 세금이 추징됐다.
11일 국세청에 따르면 A씨는 해운회사 근무경험과 세무노하우 등을 토대로 2006년부터 개인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탈세를 위해 쓴 수법은 은닉과 위장. 임대차계약서를 친인척 명의로 작성해 국내 거주장소를 은폐하는가 하면, 업무지시는 문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구두나 휴대용저장장치(USB) 등을 통했다. 언론 인터뷰 등 외부공개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세무자문도 해외 회계법인만 이용했다.
국내법인은 외국법인으로 둔갑시켰다. 총 160여척에 달하는 보유선박은 바하마 파나마 등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소유로 등재했다. 국내외 선사들에게 선박을 임대해준 뒤 받는 소득은 당연히 조세피난처로 흘러 들어갔다.
홍콩에 별도 해운회사를 세운 뒤, 실질적 해운사업을 담당하는 국내법인과는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국세청 박윤준 국제조세관리관은 "홍콩에 설립한 해운회사에는 경리 직원 정도만 근무하고 해운사업의 핵심 영업ㆍ운항 조직은 모두 국내에 뒀다"면서 "홍콩이 역외(해외발생)소득에 대해선 비과세하는 것을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조선사로부터 받은 리베이트조차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해 수령했다.
A씨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이렇게 빼돌린 소득은 총 9,700억원. 이중 일부는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국내에 다시 유입돼 호텔신축이나 사업체 인수에 사용됐다.
국세청은 A씨를 오랜 기간 추적, 4,101억원의 세금을 추징하는 한편 검찰엔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국세청 관계자는 "국내 보유 자산을 다 압류해도 추징액의 절반도 안 된다"면서 "해외자산이 많지만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신원에 대해 국세청측은 "업계 내에서는 '아시아 선박왕'으로 불리는 등 꽤 알려진 인물이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 1분기에 A씨를 포함, 사주 및 기업의 해외재산도피 41건을 적발, 총 4,741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올해 역외탈세에서 1조원 이상을 추징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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