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
● 공양 올리는 공물(供物)이 참 애틋하네요. 날갯짓소리 일곱 근, 향기 육십 평, 미동 두 치 반, 오랏줄 칠만구천 발, 울음 서른 되, 이렇게 양으로만 보면 나름 융숭한 공물 같지요. 그렇지만 공물의 대상들까지 감안해보면 느낌이 또 다르지요.
이 공물은 물질인가, 마음인가, 아니면 둘을 합한 것인가, 잠시 생각에 발목 잡히기도 하지요. 이 점이 이 시의 매력 같기도 하고요. 따지고 보면 마음 없는 물질만의 공양이란 말은 성립되지도 않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향기를 계량 단위를 통해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가시화하여 멋진 시를 썼네요. 이 시에는 식물의 윤회에 필요한 벌, 꽃향기, 꽃줄기, 비가 있고 이것을 기록할 매미 울음소리도 있네요.
공양 때 올리는 공물에서처럼 물질과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은 아름답지요. 그런데 실제 삶에서는 어디 그렇습니까. 자꾸 마음만 물질화되어 가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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