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침몰’(2006)과 ‘2012’(2009). 지난달 11일 발생한 일본 도호쿠 대지진으로 여러 차례 호명된 영화들이다.
‘일본 침몰’은 제목 그대로 초대형 지진과 해일로 일본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비극을 다룬다. 도호쿠 대지진의 참변을 바로 연계시킬 만한 것으로 이만한 영화도 없다. 개봉 당시 ‘일본 이외 전부 침몰’이라는 패러디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이외 전부 침몰’은 일본 열도만 남게 되는 천재지변 속에서 일본인이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해외 유명 인사의 구조 요청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국수적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2012’는 지구의 지각이 일대 변동을 일으키며 인류가 절멸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을 거대한 스펙터클로 담아낸다. ‘도호쿠 대지진이 인류 멸망의 전조 아니냐’는 일부 호사가들의 섣부른 예단 때문에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도호쿠 대지진이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로 이어진 최근, 공포에 떠는 인류를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1990년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꿈’이다. 일본 영화의 천황이라 불린 구로사와 감독이 자신이 꾼 여덟 개의 꿈을 소재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일본의 전설에 기대어 자연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군국주의의 공포를 상기시키기도 하는 이 영화에서 여섯 번째 에피소드 ‘붉은 후지산’이 단연 눈길을 끈다. 후지산 폭발과 원전의 연쇄 폭발이 빚어낸 악몽이 지금 동쪽 바다 건너 현실과 포개진다. 방사능을 피하려다 바다 앞까지 몰린 한 여인이 바닷속 돌고래를 보며 말한다. “부럽다. 수영할 수 있어서.” 관리로 추정되는 한 사내가 냉소적으로 응대한다. “그래 봤자지. 방사능 오염은 시간 문제야.”
‘붉은 후지산’과 생태계에 핵전쟁이 남긴 비극을 그린 일곱 번째 에피소드 ‘귀곡’ 뒤로 이어지는 마지막 에피소드 ‘물레방아 있는 마을’에선 당시 팔순을 맞은 감독의 혜안이 번득인다. 자연친화적 마을에 사는 에피소드 속 103세 노인은 조용히 읊조린다. “요즘 사람들은 자연을 잊고 있어. 더 좋은 것만 만들어 낼 줄 알지… 더욱 딱한 일은 그 한심한 발명품들을 기적으로 여긴다는 거지.” 원자력만 맹신한 채 원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인간들에 대한 통박으로 들린다. 98년 흙으로 돌아간 거장은 지하에서 요즘 아마 ‘꿈’ 속 대사를 중얼거리고 있지 않을까.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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