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한달…경기 학생들 말 들어보니"두발 자유 등 늘었지만 예배ㆍ명찰 강요 여전상벌점제도 벌점에만 치중해 개선 요소 많아"
"첫 등교일인 3월2일 새 담임 선생님이 말했어요. '예체능 손 들어봐. 나머지는 다 야자(야간 자율학습)하는 거지?' 반 강제적인 야자는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됐어요."(용인 B고교 3학년생)
"명품 학급을 뽑는데, 기준이 '쉬는 시간에 얼마나 조용한가' '상벌 총점이 몇 점인가' 등입니다. 쉬는 시간에 공부하라고 하고 마치 연좌제처럼 반 전체에 공동책임을 지우고 있어요. 학생인권은커녕 학교 가기 싫어요."(안산의 한 중학생)
경기도교육청이 3월 두발 자유, 체벌 금지, 강제 야자 금지,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등을 내걸고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지 한 달이 됐다. 학교 현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청소년인권모임 '아수나로'는 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시대, 진짜 주인 학생이 입 열다!'라는 자유발표회를 열었다. 정해진 발표자조차 없었지만 의정부 용인 부천 수원 안산시 등에서 온 경기지역 중고교생 30여명은 2시간 넘게 학교 얘기를 쏟아냈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인권조례 시행 이후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수원 Y고 학생회장 박모(17)군은 "체벌 대안으로 도입된 상벌점제는 사실상 벌점을 주기 위한 제도에 가깝다"고 했다. 박군에 따르면 Y고에서 통과 예정인 상벌점제에서 벌점 항목은 66개에 달하지만 상점 항목은 겨우 13개다. 배점도 흡연은 벌점 30점, 휴대폰 소지는 20점으로 높지만, 상점 최고점은 10점으로 '언론에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을 경우'만 받을 수 있다. 벌점이 80점 이상이면 10일 이상 등교정지 혹은 퇴학 처분 된다.
용인 D고교 최홍서(18)군은 "야자를 하는 학생에게만 마일리지를 부여, 대입 때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갈 수 있게 해준다며 '대학 가려면 야자를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교사들이 "입시 때 불이익을 주겠다" "학생생활부에 안 좋게 적겠다"고 학생들을 설득한다고 전했다.
수원의 고교 1학년생은 "학생의 자율적인 선택인 야자에 대해 학교는 안 하려면 분명한 사유를 대라고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무조건 채플(예배 모임)을 듣도록 하는데 모두 학생 인권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의정부의 한 고교 재학생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개인정보인 이름을 명찰로 달고 다니게 하는 건 고쳐야 할 관행이다. 또 집이 먼 학생에 대한 배려 없이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 기준으로 기숙사 입실 여부를 심사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친구들의 흡연 등 일탈을 신고하면 상점을 줘 교우관계가 틀어진다" "학생투표를 거친 교칙 개정안은 교장이 승인을 안 해줘 대부분 반영되지 않고 있다" 등의 증언도 이어졌다.
학생들은 나름의 해법도 제시했다. 수원 Y고 재학생은 "교칙 개정을 위해 학생 투표를 해보니 두발 길이는 자율화해도 염색이나 파마의 자유는 오히려 반대하는 학생이 많았다"며 "우리도 적정 선에서 인권을 누릴 테니 자율화가 곧 탈선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학교가 우리를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교가 학생회 활동을 인정하고 지원해 학생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공감대를 얻었다.
한편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3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는 주민발의 방식의 조례 제정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현재 발의에 필요한 8만2,000여명 중 3만여명을 채웠다. 서울본부 홈페이지에는 올 들어서만 100여건에 가까운 학생들의 인권침해 신고도 들어왔다.
수원=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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