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지원인제 반대
3월 11일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상장회사에 준법통제기준을 만들고 변호사, 법학교수 등을 준법지원인으로 1명 이상 둬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도입 취지를 보면 ‘대규모 기업에는 준법경영을 위한 제도가 미비해 윤리경영이 강화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으므로 준법지원인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준법 경영과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먼저 “대규모 기업에는 준법경영을 위한 제도가 미비하다”고 하는데, 실상이 그러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이미 준법경영을 위한 여러 장치가 있는데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는 건 이중규제 성격이 짙다.
실제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해 경영진의 직무를 제3자적 관점에서 견제ㆍ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인 소규모 기업도 ‘상근감사’를 둬야 하고 외부감사 대상기업은 신뢰할 수 있는 회계정보 공시를 위한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한 조사에서는 우리 대기업의 97.5%가 윤리경영 담당 부서를 두고 있다고 한다.
둘째, 준법지원인의 자격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한 점도 아쉽다. 준법지원인의 자격을 ‘변호사’와 ‘경력 5년 이상의 법학교수’로 명시하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선수까지 뽑아 경기를 시키는 격이다. ‘그 밖에 법률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길은 열어 뒀다.
개정법에 따르면 준법지원인은 임직원의 직무수행이 법령에 맞고 회사경영을 적정하게 하는 지까지 점검해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준법지원인이 제대로 된 직무수행을 위해서는 법적 지식에 더해 회사의 업무 흐름과 경영 활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모든 법률전문가가 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기업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가 의무조항으로 입법화된 것도 문제다. 내부통제는 경영 활동과 기업의 업무집행이 효율적으로 수행되도록 하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영역이다.
넷째, 소규모 상장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결산법인의 30%이상이 ‘영업활동현금흐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이자비용이 영업 이익을 초과하는 기업도 30%에 육박할 정도로 기업 사정이 좋지 않다. 영세한 상장 중소기업, 코스닥 기업 등이 준법지원인을 새로 고용해야 하는데 따른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주요국의 입법사례를 보더라도 준법지원인 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에 대한 일률적인 의무부과로 인해 또 다른 규제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법이 통과된 데 대해 아쉽다. 준법지원인 제도에 대한 재논의가 국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다면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하는 대상 기업의 범위를 최대한 줄이고, 자격범위는 넓혀야 할 것이다. 준법지원인 제도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개별기업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준법경영은 모든 기업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라는 것에 대해서 이론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말에서처럼 법이 모든 것을 규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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