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군인들 앞에서 애타는 표정으로 구걸하고 있는 북한 아이들(왼쪽 그림), 뿌리와 가지가 잘린 채 철창에 둘러싸인 나무(오른쪽). 미술치료사 윤덕애(56ㆍ작은 사진)씨가 탈북 청소년들이 그린 것이라며 보여 준 그림에는 그들이 간직한 지난 날의 수치스럽고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서울 중구 남산 자락에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6년째 출강하고 있는 윤씨는 10일 "잎이 없는 가지는 외로운 심리를, 뿌리가 잘린 나무는 남한사회에 잘 정착하지 못한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며 "탈북으로 인한 자신의 상처를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개교한 여명학교는 남한 사회 적응도 중요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듬해인 2005년부터 미술치료를 시작했다. 조명숙(41ㆍ여) 교감은 "학생들의 40%가 약물치료 등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남한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진 상처가 너무 컸고, 이를 교사가 모두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학기당 20여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치는 윤씨는 탈북 화가의 작품도 보러 가고 종종 식사도 함께 하면서 탈북 청소년들이 어두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윤씨는 "어두운 색 지붕에 대문이 없는 집 그림을 그렸던 한 학생은 한달 뒤 대문을 그려 넣은 적이 있는데 마음의 문이 열렸다는 의미"라며 "이 학생은 치료 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뿌듯해 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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