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원자력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신설을 추진 중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원자력 안전과 규제를 담당하는 독립기관이 생긴다는 점에서 국내 원자력계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4월 국회 통과, 7월 출범 목표
원자력 분야 행정은 크게 이용과 진흥, 안전규제의 3가지로 분류된다. 이용은 발전소 건설과 운영을, 진흥은 연구개발을 뜻한다. 안전규제에는 발전소 수명연장과 사고대응, 운영허가, 방재 등이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지식경제부가 원자력 이용 업무를, 교육과학기술부가 진흥과 안전규제 업무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진흥과 안전규제를 한 부처에서 맡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안전협약 제8조를 통해 회원국들에게 원자력 이용이나 진흥 기능과 안전규제 기능을 분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안전규제 기능이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 권고를 따르지 않은 셈이다.
또 안전규제 업무가 부처 내 한 조직에서 이뤄지다 보니, 일정 기간 지나면 다른 업무로 옮기는 공무원의 순환보직 시스템 탓에 담당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오래 전부터 나왔다. 손재영 교과부 원자력안전국장은 “원자력 관련 전공자를 교과부가 특별채용한 사례도 2000년 이후 계속 감소했고, 조직 규모도 줄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원자력 안전규제를 담당하는 곳은 원자력안전보안청(NISA). 2001년 독립기관으로 설립됐다. 손 국장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경제산업성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일본 역시 원자력 이용과 안전규제가 사실상 분리돼 있지 않은 형태”라고 말했다.
이에 교과부는 지난달 25일 열린 당정협의에 안전규제를 담당할 독립적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자력위) 신설을 제안했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7월쯤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이 일정에 맞추려면 관련 법안 8개를 제∙개정해 4월 국회 때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에선 이미 2009년과 2010년에 정두언 권영길 의원 등이 원자력 안전규제 업무를 전담할 별도의 행정기구를 설립하자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와 신설 위원회 차이
사실 원자력위는 지금도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위원장이고, 위원은 교과부 담당자와 민간전문가를 합쳐 총 47명이다. 그러나 현재 원자력위는 필요할 때만 열리는 비상설 기구다. 별도 사무국 없이 교과부가 사무국 역할을 대신한다. 원자력 안전 관련 중요사항을 심의, 의결할 수 있지만 독립적인 행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자문기구에 가깝다.
이에 비해 신설될 원자력위는 대통령이나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된 상설 행정기관이다. 상근하는 상임위원 2명과 100명 안팎 규모의 사무국도 설치된다. 현재 교과부 소속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도 원자력위 소속으로 이관된다. 손 국장은 “원자력 선진국 중 미국과 가장 비슷한 형태로 가는 셈”이라며 “원자력 안전규제를 독립적인 기관에서 담당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미국은 1974년 이미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설립했다. 캐나다와 프랑스는 총리 직속으로 각각 2000년과 2007년 원자력규제위원회(CNSC), 원자력안전청(ASN)을 만들어 안전규제 분야를 독립시켰다. 영국도 현재 안전규제 전문기관인 원자력안전공사(ONR)를 설립 중이다.
안전규제 이끌 인물은?
국내 원자력계는 안전규제 분리에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독립된 원자력위가 실제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원자력위의 수장을 누가 맡을 것이냐가 문제다. 대통령이 될지, 총리가 될지, 장관급이 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누가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의사결정 과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원자력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규제 일변도로 갈 수도 있고, 정치 경제 사회 시류에 따라 흔들릴 수도 있다. 원병출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부장은 “원자력위의 수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한 과학계 인사는 “우리 원자력계는 매우 좁다”며 “비원자력계 인물이 원자력위에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해야 객관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위가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또는 친원자력 인사들만으로 구성된다면 과연 ‘독립적인’ 안전규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다.
원자력 안전규제 업무를 내주면 교과부에는 진흥 업무만 남는다. 이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용 업무를 맡고 있는 지경부에 진흥 업무도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지경부로 넘기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진행돼야 할 원자력 연구개발이 단기적이고 산업적인 분야에만 집중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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