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봤니?' 꼭 한 달 전인 3월11일 오후 4시, 일본인 유야마 아쓰시(湯山篤ㆍ30)씨에게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는 일본인 친구였다.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일본에 리히터 규모 8.0이 넘는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방사능 유출의 진앙지인 후쿠시마(福島)현. 현관문만 나서면 바다가 펼쳐지는 집에는 60대 부모님과 90세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쉴새 없이 전화를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오후 늦게 돼서야 도쿄(東京)에서 직장에 다니는 누나(33)에게서 '부모님은 대피하고 있다'는 이메일이 왔다. 사흘 뒤인 14일 어머니(61)와 전화가 연결됐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유야마씨의 고향은 원전 1호기에서 남쪽으로 30여㎞ 거리에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부터 100년이 넘도록 같은 터에서 살았다. 그도 사이타마(埼玉)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병원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는 어머니가 꼬박 20년을 모아 10여 년 전 2층 집을 새로 지었는데, 지진으로 불이 나고 쓰나미에 1층까지 물이 찼죠. 그래도 가족들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지진 당시 집에 있었던 아버지(63)는 구순의 노모를 업고 20분을 뛰어 높은 지대에 있는 중학교 건물로 피신했고,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도 마침 대피소로 피했다.
대피소와 친척집을 전전하던 유야마씨 부모는 지난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원전 1호기에서 50㎞ 가량 떨어진 곳에 조그만 월세 아파트를 얻었다. 그는 "어머니는 방사능 공포 때문에 고향 근처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당장 생계가 막막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며 "다른 주민들도 대부분 생계 때문에 돌아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유야마씨는 이번 주말 지진 후 처음으로 일본에 간다. 한국의 사회복지제도를 연구하고 싶어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4년 전 한국에 온 그는 서강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젊은 사람은 절대 방사능에 노출되면 안 된다"며 부모님이 그의 귀국을 극구 말려 서울에서 마음만 졸여왔지만 주말 동안 다녀올 예정이다. "사실 처음에는 방사능 걱정이 많이 됐지만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부모님께 위로가 될 것 같아서 가기로 했어요."
유야마씨는 한국인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 감명받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학과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괜찮냐고 위로해주고 성금도 모아줬어요. 말 한 두 마디 해본 게 전부였던 사람들까지도 전화를 해주는 등 안부 전화도 50통 넘게 받았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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