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문제가 단기에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예멘, 시리아 등 주변 국가의 정정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달러 약세까지 겹치면서 유가는 110달러마저 돌파하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 증시의 발목을 잡은 이슈도 결국은 유가였다. 주요 신흥국의 중앙은행이 지난해 경기 부양적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긴축으로 돌아선 것도 물가 압력 탓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는데 지난달 물가는 전년대비 4.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08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통상 인플레 압력은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제한된 소비여력에 충격을 줘 실질소비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 하지만 무조건 물가가 오른다고 그것을 나쁜 현상으로만 볼 것인가.
경기가 침체에 들어섰다 회복한다는 건 줄었던 소비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수요가 증가하는데 물가가 떨어지길 바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외적으로 미국에서는 90년대 중후반 그런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신경제'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경제호황기였는데 경기가 좋아 수요가 늘어도 물가가 안정됐던 전무후무한 현상을 실제로 보여줬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안정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디플레'수출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불과 반년 전만해도 미국은 디플레 걱정이 더 컸던 국가였는데 이제 인플레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경기가 가시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유가상승에 따른 국내물가 영향은 어떨까. 우선 2005~2007년 국내 물가 추이를 살펴보자. 당시 유가는 40달러 수준에서 100달러까지 급등했다. 2.5배가 상승했는데 오히려 국내 물가는 2004년 8월 4.8% 상승을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2007년까지 2% 초반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경기호전과 물가안정이 겹치면서 짧게나마 국내 경제는 '신경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정답은 환율이다. 2004년 1,100원대 후반이던 원ㆍ달러 환율이 2007년 900원선까지 하락했다. 원화강세는 수출기업을 괴롭게 했을지 모르지만 수입물가 안정에는 크게 기여했다. 당시 달러 기준 수입물가는 두 자릿수의 상승세를 보였지만 원화기준으로는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도 많았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가파른 원화강세에 대해 당국의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이유도 물가와 연관이 깊다. 원화절상은 국내 물가 압력을 완화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4월 이후 안정될 것이라는 정부의 자신감은 환율을 배경에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가상승이 부담스러운 요인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 물가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과 국내 물가도 환율이 완충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유가가 현 수준에서 더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최근 증시는 단기 급반등이 실적 시즌 진입과 맞물리며 탄력이 둔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주에는 옵션 만기까지 예정돼 최근 외국인의 공격적 매수에 이어 만기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가격조정보다는 기간조정 형태의 조정을 예상한다. 최근 신흥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글로벌 펀드의 자금 규모를 볼 때 가격조정이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실적주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김성봉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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