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중요한 산업기술이 유출되는 사례가 속출하는데도 당국의 안전망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올들어 벌써 17건이 적발됐고, 이 중 7건이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라고 어제 경찰청이 발표했다. 지난해 7월부터 전국 주요 지방청의 외사수사 업무를 강화한 결과 사건 해결 사례가 예년보다 40% 이상 높아졌다고 한다. 그 동안 경찰에 발각되지 않았거나 아예 눈에 띄지 않았던 경우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이번에 적발된 전자제품 패킹기술의 대만 유출 사례만 해도 추정 피해액이 23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유출 사실이 뒤늦게라도 확인되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2009년 LG전자의 에어컨 핵심기술이나 삼성전자의 휴대폰 관련 기술 유출의 경우 미수에 그치거나 복제품 상용화 직전에 사안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GM대우의 라세티 제조기술은 러시아 자동차회사가 생산한 짝퉁 자동차들이 시장에 나돌 때까지 유출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대기업이 이런 정도이니 중소기업은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발간된 국가정보원의 '첨단 산업기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유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직접 피해액은 건당 평균 10억원을 넘으며, 연 매출액의 10%에 가까워 매년 5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자료에 의하면 대기업은 96%가 사내 정보 보호정책을 운영 중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58% 이상이 그런 대비가 없으며, 보안교육이나 보안책임자가 없는 곳이 3분의 1을 넘는다.
산업기술 유출문제를 개인의 윤리 도덕이나 기업의 개별적 상황으로 치부하기엔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더구나 중국과 동남아 쪽에 한정됐던 유출 사례가 최근엔 대만 러시아 독일 일본 미국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2006년 관련 법률을 제정했으나 기업의 신고에 의존할 뿐 현실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보호해야 할 산업기술의 범위와 대상을 정해 신고ㆍ등록내용을 관리하는 등 실효성 있게 법을 개정하고, 정부도 행정적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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