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방사능 유출사고는 거듭되는 자만과 실수가 빚어낸 최악의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계이전부터 사고 이후 대처까지 살펴보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아도 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東京)전력은 곳곳에서 실수를 범했고, 결국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버금가는 사고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1. 강진 대비 건의 묵살
후쿠시마 제1원전 비극은 40여년 전 설계 때부터 예견됐다. 당시 안전 담당 기술자는 규모 9의 지진에 대비할 것을 요청했으나, 윗선에서 1,000년에 한번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상정할 수 없다며 묵살했다. 쓰나미 높이도 최대 5.5m로 책정했다가 고작 20㎝를 보강, 5.7m로 건설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번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14~15m였고, 제1원전 일대가 4~5m 가량 침수되면서 1~5호기 전력이 일시에 손상됐다고 10일 보도했다.
2. 비상발전기 개보수만 했어도
쓰나미의 피해에도 전력선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전력공급에 쓰이는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후쿠시마 제2원전의 경우 원자로 건물내에 위치한 반면 제1원전은 터빈실내에 위치, 이번 쓰나미에 터빈실과 함께 침수됐다. 도쿄전력은 이 문제를 알면서도 예산을 빌미로 개보수를 외면했다.
3. 노심용융 시뮬레이션으로 예상
연료봉 노출, 수소폭발, 노심용융, 원자로압력용기 파손 등으로 이어지는 사고진행경로도 이미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상됐다. 미 연구기관은 후쿠시마 제1원전과 같은 종류의 원전이 유사한 사고과정을 거치는 것을 파악했다. 일본 원전안전연구기구도 지진으로 전원이 상실될 경우 3시간40분 이내에 압력용기내 압력상승으로 용기가 파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압력용기를 감싸고 있는 원자로 격납용기에는 통상 질소가 가득해 수소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등 잘못된 논리를 내세워 이를 일축했다.
4. 해외 전문가 도움도 외면
지진 직후 미국은 원전 전문가를 일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관저에 상주시키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절했다. 미국은 이어 원자로 냉각용 펌프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으나 필요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일본은 뒤늦게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좀 더 일찍 손을 내밀었어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5. 위급상황에도 매뉴얼 신봉
매뉴얼지상주의도 피해를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지난달 16일 도쿄전력측은 제1원전 주변에 방사선량 수치가 치솟자 직원을 철수시켜 복구가 늦어졌는데, 이유는 방사선량이 매뉴얼에 정해진 피폭 기준치를 상회하기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후 피폭 기준치를 높인 뒤 직원들을 재투입, 실소를 자아냈다.
니시야마 히데히코(西山英彦) 원자력안전보안원 심의관은 9일 "다중 방호, 5중 장벽이 있는 한 절대 안전하다고 말했는데도, 이런 사태에 직면했다"며 "새로 알게 된 점부터 고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태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냉소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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