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청암 스승께 안부인사 드리러 갔다. 인사를 드리자 스승은 전날 다녀온 어느 행사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스승의 첫 말씀이 "도대체 VIP가 뭐냐?"였다. 정년퇴임 후 스승은 초대받는 행사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당신이 보고 싶은 행사, 좋아하는 행사 뒤편에 익명의 관객으로 참가하길 즐겨 하신다.
고희를 넘긴 스승은 그렇게 '산중 초부(樵夫)'를 자처하며 은둔의 편안함을 즐기신다. VIP의 뜻을 몰라 묻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여쭈었더니 자초지종은 이랬다. 평소 좋아하는 민속행사가 열린다기에 쌀쌀한 밤 날씨에도 사모님과 함께 보러 가셨다.
본 행사 이전에 식전 공개행사가 지루하게 진행되는데 자리가 텅텅 비어있어 앉으려고 하니 젊은 친구가 안 된다고 했다. 왜 안 되냐고 하니 VIP석이라고 했다는 것. 사모님께서 나서 우리집 노인 좀 앉게 해달라고 해도 무조건 안 된다고 눈알을 부라리기까지 했다.
서서 기다렸다 VIP들이 우르르 입장하는데 누군가 보니 그 지역 시의원, 도의원, 이런저런 단체장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일 앞자리는 남편을 대신해 온 부인인데 그 부인은 스승의 제자였다. 자리를 마련해두었던 VIP들이 다 오지 않자 그 젊은이가 스승께 앉으시라고 했다. 시민이 진정한 VIP라고 생각하시는 스승이 그 자리에 앉았는지는 그 뒤 이야기는 상상에 맡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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