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 그렇게 담합하는 게 위법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더군요,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사업자가 대놓고 담합할 수 있었던 거겠죠."(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지난달 발표된 '단무지 담합'은 공정위로서도 특이한 사건이었다. 23개나 되는 업체가 조합을 끼고 단무지 공급 가격을 일률적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담합은 소수업체가 장악하는 독과점 시장에서나 가능하다는 일반적 상식을 깨뜨린 것. 시장지배력과 정보력이 뛰어난 대기업 아닌, 영세한 단무지 제조업체들까지 담합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의외였다.
공정위는 12일 또 하나의 '이색업종'에 대한 담합조사결과를 공개했다. 각종 볼트와 너트를 만드는 7개 회사가 2003년부터 5년 동안 값을 올릴 때나 내릴 때나 항상 담합을 해온 사실을 적발, 시정명령과 함께 2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당국자는 "대기업에서부터 영세기업까지, 대형 생산재에서 작은 먹거리까지 담합에는 한계가 없는 듯 하다"고 말했다.
흙, 고철, 나사, 졸업앨범, 메추리알, 교통단속카메라...실제로 최근 6개월간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사례들을 보면 사실상 전 업종을 망라되어 있다.
우선 대기업. 국내 가전 3개사는 2007년부터 4년 동안 학교에 납품하는 TV와 에어컨 가격을 담합하다가 지난해 10월 공정위 제재를 받았고, 담합하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대형 건설사의 경우 판교 아파트 공사에서 들러리 입찰을 하다가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전선(올 2월), 금융자동화기기(4월) 등도 대형업체의 장기간 담합이 드러난 사건이다.
하지만 영세업체, 특이업종의 담합도 규모만 다를 뿐 이에 못지 않다. 농민들에게 가격 부담을 전가시킨 모판 흙(올해 3월)이나 농업용 비닐하우스 필름(4월), 고철(지난해 10월), 심지어 메추리 부화장(11월)까지 영세업체들의 담합사례도 줄을 이었다. 교통단속카메라(올해 1월) 등 정부기관에 납품하는 조달품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8월 경남지역 자동차 운전학원의 수강료담합, 10월 신용평가회사들의 수수료 담합, 올해 2월 온라인 음원서비스 담합까지 상품가격 아닌 서비스요금 담합도 끊이질 않는다.
담합은 경쟁을 회피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사업자들이 가로채는 사실상의 범죄. 시장경제에서 가장 암적인 행위로 지적되고 있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공정위에 안 걸리는 품목이 예외라 할 정도로 가격 담합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담합공화국"이라며 "인맥이나 사업자단체로 연결된 동양적 기업문화 때문에, 담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