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은 쌓아놓고, 재단전입금은 안내고… "입맛대로 인상"
"학교 경영 책임지는 총장님이 등록금 결정해야지."
올해 초 고려대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구성을 위해 학교와 학생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학교 측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당시 학교는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이후 등심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이 학교는 신입생에게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발송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져 결과적으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게 됐다.
등록금이 봉?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사립대 110교 가운데 79교가 등록금을 인상했다.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대학 등록금은 실제 어떻게 책정되고 있을까.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대학 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205개교는 등록금 책정 근거로 물가상승률(92.2%) 인건비 증감률(85.9%) 기타 운용비 증감률(84.9%) 타 대학 등록금 수준(83.4%) 주요 사업비 증감률(81.5%) 전년도 등록금 수준(81.0%) 등을 고려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예결산 안을 짜면서 수입의 부족분을 등록금 인상으로 채워 넣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높아지기만 한다. 올해 중앙대의 전체 수입은 약 3,329억원(등록금 회계 기준) 중 등록금이 2,514억원. 등록금 의존율이 75.5%로 지난해 58.8%(추가경정 예산 포함)에 비해 크게 올랐다. 서강대(54.5→68%) 한양대(63.4→75%) 숭실대(55→66%) 등도 같은 추세를 보였다. 이들 대학은 올해 등록금을 2.8~3% 올렸다.
반면 인상 근거가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 안 의원의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양대 한성대 등은 '법정부담금 증가' '토지매입' 등 법인에서 충당해야 할 비용을 등록금으로 전가했다. 중앙대 이화여대 등에서 '장학금 확충' '타 대학과의 등록금 격차' 등 불합리한 요인도 다수 발견됐다. 연덕원 연구원은 "수입은 축소하고 지출은 많게 해서 남은 돈을 적립하거나 이월하는 관행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책정 과정도 일방적… 식물 등심위
대학의 일방적인 등록금 산정을 막고, 학생들이 책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도입된 등심위도 각 대학에서 파행을 겪었다. 개정된 고등교육법은 등심위 구성원 중 교직원 학생 외부전문가 중 어느 한쪽 비율이 50%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만 담고 있다.
상당수 대학들은 외부 전문가를 학교에 유리한 인사들로 채워 넣는 바람에 학생 측이 반발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대학 측이 제시한 등심위 위원 구성안을 거부했고, 서강대도 등심위를 3차례 열었음에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서강대는 이런 상황에서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학생들에게 통지, 학생대표들이 지난달 단식과 삭발로 항의하기도 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학생과 학생 측 추천 전문가가 2분의 1은 참여해야 수평적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학교와 학생의 등심위 위원들에게 등록금 심의ㆍ산정에 필요한 각종 자료 제출권과 실질적인 의결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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