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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4월 9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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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4월 9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입력
2011.04.0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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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잊히지 않는 삽화가 있다. 외할머니는 여름 소나기가 쏟아지자 이종사촌 형과 나를 발가벗겨 비누칠을 해서 그 소나기 속에서 씻게 하셨다. 형과 나는 고추를 내어 놓고 마당에서 신이 나서 뛰어다니며 목욕을 했었다. 검소하셨던 외할머니는 물을 아끼기 위해 소나기를 기다려 어린 외손 둘을 목욕을 시켰다.

빗물도 참 맑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올 봄엔 봄비가 오시는데 국민이 공포에 떨었다. 봄비도 '방사능 봄비'가 내렸다. 사람은 우산 쓰고 피할 수 있다지만 대지는, 나무는, 텃밭에 뿌려놓은 저 씨앗들은 어찌할꼬. 저 땅에서 자라는 것들을 먹어야 하는, 저 물들이 흘러가는 강에서 바다에서 잡은 것들을 먹어야 하는 멀지 않은 내일이 곧 다가올 것이다.

사실 두렵다. 일본의 재앙이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는 일들이 두렵다. 계속되는 일본의 여진, 거기다 백두산 대폭발이 예고되는데 오래지 않아 영화 속에서 보아온 폐허로 남은 지구를 볼 것만 같다. 21세기까지 쌓은 지구의 문명은 사실 바벨탑에 불과한 것 같다.

강진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문명을 우리는 편안한 보금자리로 믿고 살았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두려움보다 나도 종말이 온다 해도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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