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교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생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한편, 삼삼오오 모여 오후 7시로 예정된 서남표 총장과의 대화에서 말할 내용들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학부 총학생회 주최로 교내 창의관 터만홀에서 열린 이날 총장과의 대화는 400여명의 학생들이 좌석과 통로를 가득 메운 채 진행됐다. 입장하지 못한 학생들은 옆 방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했다. 대화 시작에 앞서 07학번 이모군이 건물 앞에서 "서남표 총장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사과와 서남표식 개혁의 폐기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살 학생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한 대화는 이승섭 학생처장이"터놓고 모든 사안을 이야기하기 위해 비공개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40여분간 공개 여부를 둔 공방전으로 치달았다.
학생들은 학교측 제안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 학생은 "총장과의 대화가 국가적 안위가 걸려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7일 숨진 박모군의 동아리 선배라는 학생은"매스컴의 자극적인 보도가 걱정이라고 하는데 총장이 한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마침내 학생들이"공개, 비공개를 떠나 서 총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학교측은 10여분간 회의 끝에 서 총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오후 8시께 모습을 드러낸 서 총장은 학생들에게 다시 묵념을 제안한 뒤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최근 사태들은 일생일대에 처음 겪는 일들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집안 사람끼리 할 이야기가 있고, 가족간 다른 의견이 나오면 토론도 해야 할 것"이라며 "기자들이 있으면 대답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학생들의 요청으로 기자들이 행사장을 빠져 나간 오후 8시30분부터 3시간여에 걸쳐 학생들과 비공개로 대화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이"개혁 정책을 바꿀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서 총장은"내가 하는 일이 영구히 지켜질 것으로 생각 않는다"며"보직자와 논의해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1학년생들의 학업부담이 많다"는 학생들의 지적에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에 다닐 때 수업이 호스로 물을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들어 설득하기도 했다고 참가자들이 전했다. 아울러 서 총장은 "제도를 좋은 의도에서 세웠지만 소통의 문제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통 강화를 약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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