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 싫으면 나가라,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카이스트에 올 필요가 없다.” 카이스트(KAISTㆍ한국과학기술원) 고강도 개혁이 한창이던 2007년 서남표 총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토로한 소신이다.
서 총장은 2006년 7월 카이스트에 부임한 후 교수ㆍ학생 모두에게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개혁에 착수했다. 학생에게는 ‘징벌적 수업료’ ‘전과목 영어강의’가 주어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지내면서 교수진 40%를 교체했던 서 총장의 개혁 드라이브는 ‘철밥통’이라 불리던 교수의 정년제도도 개혁했다. 서 총장 취임 후 4년간 정년심사를 받은 교수 148명 중 24%가 탈락했다. 대입전형도 과감히 고쳐 입학사정관제를 확대해 잠재력과 성공 가능성만으로 일반계 고교생을 다수 선발했다. 또 서 총장은 2009년 3월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0학년도부터 신입생 150명을 학교장 추천ㆍ무시험 전형으로 뽑는다고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과감한 개혁은 단기간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면서 특히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의 찬사를 얻었다. 카이스트는 영국 일간 ‘더 타임스’와 대학평가기관 QS가 2009년 10월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공학ㆍ정보통신(IT) 분야 세계 21위라는 국내최고 성적을 거뒀다. 종합평가 순위에서는 2008년 종합 95위에서 2009년 26단계를 올라선 69위를 차지해 미국의 명문대학들인 조지아공대(86위), 퍼듀대(87위), 텍사스대(76위) 등을 비롯해 스웨덴 웁살라대(75위), 네덜란드 델프트공대(83위), 싱가포르 난양공대(73위), 독일 뮌헨대(98위)를 앞서기도 했다.
서 총장은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무난히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학생과 교수 등 학내 구성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실제 지난해 4월 학부생 1,255명을 대상으로 한 총장 평가에선 전체의 53.4%가 연임을 반대했다. 반대하는 학부생의 65.7%가 ‘소통 부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교수협의회도 당시 “성과주의에 매몰돼 질적인 발전을 도외시한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팽창과 독단적이고 외부 과시적인 형태로 추진되는 개혁은 장기적으로 카이스트가 세계 제일의 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카이스트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의 카이스트대학원 입학률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이스트 졸업 후 의대로 방향을 전환한 한 학생은 “4년간의 살인적 경쟁이 입학초기의 공학에 대한 열의마저 앗아갔다”고 토로했다.
외부의 찬사와 내부의 반대 기류가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던 서남표식 개혁은 그러나 지난 1월 전문계고 출신 로봇영재 조모(19)군의 자살을 계기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 급기야 젊은 과학인재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태로 확산됐다.
학생 자살이 이어질 때마다 근본적 문제해결보다는 학생 상담강화 등 미봉책만 내놓던 서총장은 결국 지난 7일 ‘서남표 개혁’의 상징인 ‘차등 등록금제’의 폐지를 수습책으로 내놓으며 머리를 숙였다. 교수ㆍ학생의 반대 여론에도 서 총장에 신뢰를 보내던 카이스트 이사회마저 15일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서남표식 개혁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여전히 “세계적 명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고강도 경쟁이 필요하다”는 서 총장의 개혁 옹호론이 만만치 않지만, 그 개혁의 상징인 징벌적 등록금제와 전과목 영어수업은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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