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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남자를 살리는 교육개혁

입력
2011.04.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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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배정을 앞둔 남자 중학생들은 되도록 남녀공학을 피하려고 한다. 내신성적이 중요한데 남녀공학 고교에서 남학생이 좋은 순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유에서다.

여학생 우위는 대학입시는 물론 대학 졸업 후의 국가고시나 취업시험에도 이어진다. 대학입시나 국가고시에서의 '여풍'은 이제는 너무 당연해서 화제도 아니다. 오히려 '여풍'이 기본 목표인 '세상의 반'을 넘어서면서 현장의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남자 교사를 찾기 어려운 초등학교다. 남자 교사를 바라는 학부모들이 많아 수요공급 불균형이 심각한 데다, 학교 내부 업무에서도 불편이 많다고 한다.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고 교육대학 입학에 남녀 할당제를 도입했지만, 그 효과는 임용고사를 거치며 반감된다. 기업의 취직시험도 공공연한 비밀인 면접과정의 '억지 조정'을 거치지 않고 이른바 '스펙'이나 필답고사 성적만 기준으로 한다면 남자들이 끼어들기 어렵다.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면접위원을 늘려 여성 합격자를 줄이자는 말이 나돈다. 농담이 섞였지만, 여성 면접위원은 자기보다 똑똑하든 멍청하든, 예쁘든 못생기든 여성 응시자의 결점을 꼭 찾아낸다는 이유에서다.

남학생 실력 저하 날로 확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30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1977년 대학에 들어갈 당시 서울대 사회계열 530명 가운데 여학생은 딱 한 명이었다. 옆의 인문계열 180명 가운데서도 여학생은 7명이 전부였다. 1% 남짓한 숫자다.

30년 사이의 경천동지할 변화의 이유를 짚으려면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가 딸 교육에 대한 관심이다. 과거 다자녀 가구에서 딸은 제대로 교육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대학진학률 변화는 몰라도, 학업성적 상위 0.5%의 성별 분포 변화를 설명하진 못한다. 30년 전 교육환경이 유복했던 여학생만으로도 위의 1%가 아니라 최소한 10%는 돼야 했다.

다른 요인으로 두드러진 게 인터넷이다. 전체 인터넷 중독이 문제지만, 사춘기 사내 아이들에게 게임과 음란물은 특히 심각한 늪이다. 최근 신경과학계가 남녀 인식구조의 본질적 차이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잇따라 내놓았듯, 이 두 늪은 유독 사내 아이들이 빠지기 쉽다. 학원가의 PC방에 가보면 금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중고생의 90%가 남학생이다.

남학생의 게임 탐닉은 진화사가 짐 지운 사냥 본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성장기의 특성인 음란물에 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학습량을 요구하는 중ㆍ고교 시절과 겹쳤다는 데서 시간적 공교로움이 크다. 석기ㆍ청동기 시대라면 이런 욕구는 사회적 역할과 얼마든지 조화될 수 있었지만, 성년이 되어야 이성교제가 자연스러운 현실에서는 부작용만 커졌다.

현재 거론되는 '셧다운제'가 이런 현실을 얼마나 고칠 수 있을지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부모형제 등의 여러 아이디를 활용하거나 다른 나라로 도는 아이들을 막을 길이 없다. 또 업계의 반발, 나아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도 염두에 둬야 한다. 남녀의 인식구조 차이를 감안한 입시 과목 조정이나 본고사 부활 등도 거론되지만 여학생과 그 부모들의 반발을 부르기 쉽다.

게임·음란물과 거리 두어야

그나마 손쉬운 대안이 중ㆍ고교 체육수업 강화다. 아이들을 매일 두 시간만 운동장을 도는 등 체력 강화 활동에 투입해 집에 가면 이내 잠에 곯아떨어지게 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 서구의 교육제도를 수없이 받아 들이면서, 왜 체육만은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다.

중ㆍ고교 때는 체력과 상상력 다지기에 중점을 두고, 가끔 책상 앞에 앉을 수 있는 자세만 가르친 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켜도 늦지 않다. 게임과 음란물에 시달리는 틈틈이 공부에 진을 빼고는 대학 일학년에 벌써 기력이 쇠한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안쓰럽다면 대대적 결단이 필요하다. 정말 균형되고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남자도 살려야 할 것 아닌가.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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