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국어시간이었다.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교과서엔 실렸으나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영시를 정성스레 낭송한 뒤 선생님이 물었다. "시인은 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하품을 깨물던 우리는 그제야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왜 잔인하다고 했지? 선생님이 말했다. "앞산에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이 있다고 상상해봐. 눈 덮인 겨울엔 희미했던 무덤이 봄비에 파랗게 모습을 드러낸 거야. 잊었던 슬픔이 되살아나지 않겠니."
교실 안이 고요해지며 몇몇 아이들이 나지막이 훌쩍였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T.S.엘리엇의 '황무지'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시이지만, 사춘기의 우리는 죽은 연인을 떠올리게 하는 봄의 잔인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눈물을 글썽이며 시를 외었다.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날 이후 수십 번의 4월을 겪으며, 죽은 연인의 무덤을 상상하지 않고도 삶이 때로 죽음보다 가혹함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불공평하며 잔인한 것이로되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견뎌야 한다고, 자못 도통한 듯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4월. 늘 그랬듯, 이 봄에도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지난 겨울 수백만 마리 짐승들이 산 채로 묻힌 대지를 조문하듯 방사능 비가 안개처럼 조용히 내려앉는 사이, 꽃도 새도 나무도 짐승도 소리치지 않았다. 대신 어떡하느냐고 아우성친 것은 사람이었다. 이 모든 일을 만든 사람만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로 발을 굴렀다. 우산도 없이 저 비를 맞는 나무에게 미안한 줄도 모르고.
누구는 말하리라. 나는 몰랐다고, 그러니 죄가 없다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말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며, 신 앞에선 유죄지만 법 앞에선 무죄다." 그러나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 겪는 고통과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에서 자신의 고통과 죄를 보았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그는 살점도 없이 사라진 히로시마의 소녀에게서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열세 살 안네 프랑크를 떠올렸고, 그 어린 목숨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호소했다. "더러운 자본의 권력, 끊임없는 탐욕의 침략자들/ 그대들은 그 동안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고통만으로는 정녕 부족하단 말인가/ 잠깐만, 아주 잠깐만 멈추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아우슈비츠의 소녀'에서)
지난 겨울 350만 마리에 달하는 소와 돼지가 생매장되었고, 이 봄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이 하늘과 바다를 뒤덮고 있다. 내리는 봄비가 잠든 뿌리를 깨우면 죽은 땅에서 무엇이 자랄지 두려워지는 4월이다. 그런데도 단위면적당 최고의 밀도를 자랑하는 이 땅의 밀집 축산을 바꾸지 않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원전 밀도를 걱정하지 않고 이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잠깐만, 아주 잠깐만 멈추고 생각해보자. 고기와 해조류, 비타민 C, D를 챙겨먹으면서 타인의 고통에 눈 감은 채 세상의 잔인함이 나만 비껴가기를 바랄 것인가. 그리하여 모두가 죽은 땅에서 홀로 살아남아 잔인한 4월을 탓할 것인가, 정녕!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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